▲굴등전망대 너머로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심명남
- 오늘이 4회째 맞는 남면 향우회라 들었습니다. 회장님이 생각하는 고향의 의미는 어떤 것인지요?"고향이란 사람들에게는 희망도 주고, 용기도 주고 그리움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옛날 섬이라는 것은 귀양살이나 다름없었지요. 뭐 문화나 교통 모든 것이 단절되었고, 단절이라기보다는 아예 없었으니까요. 그런 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환경의 변화가 있고 시대의 요구에 의해 발전해 나가면서 친환경적인 생활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자연적으로 섬이 가지는 아름다움과 다도해가 갖는 그런 낭만적인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최근 금오도 비렁길 같은 게 상당한 관심을 갖게 되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오다보니 섬의 자랑거리가 아니겠습니까? 이런 것들을 우리가 좀 더 화합을 통해 자긍심을 갖도록 하기위해 누군가가 선도자적인 역할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취지에서 몇몇이서 뜻을 모아 출발하게 된 것입니다."
- 오늘 여운익 대회장님과 많은 얘기를 나눴는데 회장님이 성공한 기업인으로서 여수에 좋은 일을 많이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지역 사람들은 회장님이 운영하는 기업에 대해 잘 몰라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업자랑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자랑할 것은 없고 30년 동안 한 우물을 파고 있습니다. 지금은 (주)와이씨텍, 와이씨텍 베트남지사, (주)동원중공업, (주)영창신기술 이라는 4개의 회사가 있습니다. 초창기 우리 경제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것은 신발, 목재, 섬유산업이었습니다. 그것이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산업이었는데 그 중심이 부산이었습니다. 지금은 자동차나 IT첨단산업이 중심이 되고 있지만 그때 당시로는 그 산업이 유일하게 한국 수출의 길을 텄습니다.
당시 신발산업에 관심을 가지고 종사하게 되었는데 때마침 나이키가 한국에서 개발을 하게 되면서 저희가 참여하게 되었고 그게 기초가 되어 나이키 신발에 들어가는 부품인 아웃솔(밑창), 미드솔(중창), 인솔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왜냐면 농구선수 조던, 축구선수 호나우도, 테니스의 유명한 선수들과 단거리 육상선수들이 0.001초를 줄이기 위해신소재를 개발한 신발을 신잖아요. 우리 회사는 그런 원료를 독자적으로 개발해 나이키에다 독점공급을 하고 있습니다.
아웃솔과 미드솔은 우리가 직접 만들었고 이것을 만드는 원료도 독자 개발했습니다. 그 주원료가 석유화학 제품인데 이것을 브랜딩해서 신소재 원료를 만들었습니다. 그런 유명한 선수들이 우리가 개발한 소재로 제조한 나이키 신발을 신고 달리고 있다는 얘기죠. 이렇기 때문에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 회장님께서 베트남에서 명예영사관으로 계시고 베트남에다 공장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베트남에 있는 공장은 규모가 큽니다. 인건비에 대한 경쟁력에서 한국이 떨어지다 보니 본사가 있는 부산에서는 컴파운드 원료를 개발하고 있고 베트남 공장에서는 그 원료를 바탕으로 아웃솔, 미드솔을 생산해서 나이키에 공급을 하고 있습니다. 나이키는 하청에서 자기들이 주문한 것을 각 공장에서 OEM방식으로 신발을 만들어서 제공받고 있는 셈이죠."
- 그러면 베트남 공장에서도 완제품이 만들어지는 것인가요?"완제품이 아닌 반제품을 만드는 곳입니다. 아웃솔, 미드솔을 만드는 것인데 거기다 카트만 씌우면 완제품인 신발이 되는 것입니다."
법정스님과 유발상좌, 30년간 '맑고 향기롭게 운동' 펼쳐- 회장님이 여수에서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있는데 부산에서는 어떤 역할을 합니까?"부산에서는 법정스님의 유발상좌를 맺고 있습니다. 유발상좌란 일반사회에서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인데 승가에서는 이를 유발상좌라고 부릅니다. 법정스님과 24년 동안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맑고 향기롭게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런 관계를 통해 '맑고 향기롭게 운동'의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고 서울을 비롯해 전국에 각 지부가 있습니다. 부산본부에는 회원이 약 4천 명 정도가 있는데 어려운 이웃이나 고아원, 양로원 할 것 없이 자원봉사자로 하여금 매주 목욕봉사. 밑반찬제공, 밥퍼주기 운동, 장학금 기부 등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곳입니다. 이런 운동을 30년째 부산에서 해오고 있습니다."
- 여수에서 꾸준히 장학금을 전달해 왔고 올해도 장학금 1억을 쾌척하셨는데 고향후배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매년 여수에 1억 원씩을 우선적으로 장학금을 주기로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매년 할 것이고 여건이 형성되면 50억의 장학기금을 만들어 후진양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해볼까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지역에서도 인재양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기업이나 일반사회나 그 인재양성이 있어야만 기업도 미래지향적인 계획도 수립할 수 있고 사업목표를 추진해 나갈 수 있는 것이지요. 사람이 없으면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죠.
예를 들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어느 곳이든지 대통령이 나올 수 있는데 우리 고향인 여수는 왜 없을까? 이런 것도 좀 심혈을 기울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함께 후진양성에 동참하고 그런 희망을 제공한다면 우리도 가능한 일이 아닐까? 지역을 대표하고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많은 인재들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가 많은 뒷바라지를 하고 관심을 가져야 되겠지요. 그리고 후배들도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기죽지 말고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것이 필요해요. 호남이란 곳이 항상 짓눌러 있었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왜냐면 지금은 글로벌 시대인데 작은 지역에서 편견을 가지고 주눅들 필요가 없고 당당하고 용기 있게 희망과 목표를 가지고 우리가 열심히 한다면 그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럼 앞으로 장학재단을 설립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말씀인가요?"예 그것은 꼭 그럴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 여수가 교육이 제일 문제입니다. 중학교를 졸업한 지역의 우수인재들이 밖으로 빠져 나가는데 거기에 대해 한마디 해주신다면?"글쎄요. 제가 여수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교육의 질이라든지 평가를 하기는 좀 곤란하고 다만 그런 경향이 있다면 여수의 유지들이 좀 더 분발하고 시장님이나 여러 정책을 입안하신 분들이 관심과 협력을 통해 대안을 마련해 방향을 잘 잡아나가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고향에는 자주 가시는지요?"고향에는 조카가 살고 있고 아버지, 어머니 산소가 계시니까 일 년에 몇 차례씩은 꼭 갑니다."
- 그러면 노후에 고향에서 생활하실 의향은 있는지요?"내가 미래를 어떻게 예측할 수 있겠습니까(웃음). 다만 희망이 있다면 정말 여건이 된다면 장학재단을 만들어 운영을 하고 어찌 들으면 우스운 소리가 될 수 있지만 저는 늘 공개적으로 그런 얘기를 해 오고 있어요. 앞으로 내가 일할 수 있는 나이가 10년 정도밖에 안될 것이거든요. 그 이후에는 전부다 물려주고 내가 여유를 가지고 전국을 돌고 싶어요. 여행도 하고 고향을 우선적으로 다니면서 여건이 된다면 차속 트렁크에 선물을 잔뜩 싣고 어느 마을을 가서 이집에 누가 아프다더라, 이집은 힘들다더라. 이런 집에 살며시 선물을 문지방에 내려놓고 말없이 나와서 그런 분들께 용기를 줄 수 있는 그런 일들을 하고 싶습니다. 더불어 지리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생활해 보고픈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