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출소장 딸 강간살인 누명 15년 옥살이...재심 '무죄'

대법원 "범죄 증명 없다고 판단해 무죄 선고한 원심은 정당"

등록 2011.10.27 18:58수정 2011.10.27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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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춘천에서 파출소장의 초등학생 딸을 강간한 뒤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5년간 옥살이를 하다 모범수로 가석방됐던 J(77)씨가 재심 재판을 거쳐 39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사건은 이렇다. 1972년 9월 당시 춘천경찰서 역전파출소장의 딸(10)이 춘천시 우두동 소재 논둑길에서 사체로 발견됐는데, 부검결과 피해자는 강간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자, 내무부장관은 10월 10일까지 범인을 검거하도록 지시하고 그 시한까지 범인을 검거하지 못할 경우 관계자들을 문책하겠다는 시한부 검거령을 내렸다.

춘천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은 30여명의 용의자들을 소환해 수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춘천시 우두동에서 만화가게를 운영하던 J씨가 평소 여자관계가 불량하다는 등의 정보가 입수되자 연행해 조사했으나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후 J씨를 다시 연행해 자신이 범인이라는 자백을 받아냈다. 당시 공소사실을 보면 J씨는 만화가게 단골로서 자신을 곧잘 따르던 피해자를 사건 현장으로 데려가 강간한 뒤 목 졸라 살해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J씨는 검찰에서 첫 번째 자백한 이후의 수사과정 및 공판과정에서 "범행을 자백한 것은 경찰에서 받은 고문 등 가혹행위 때문이었다"고 주장하며 범행을 부인했다.

하지만 J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5년간 복역을 하다 1987년에 모범수로 가석방됐다. 출소한 J씨는 무죄를 호소하며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기각됐고 이후 2007년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문을 두드렸다.


과거사정리위원회는 "당시 수사경찰관들은 일단 J씨가 범인으로 의심되자 적법절차에 반하는 무리한 수단을 동원해 관련 참고인 진술 등을 확보했고, 이를 토대로 J씨에게 자백을 가용하는 와중에 상당한 정도의 폭행과 협박 내지 가혹행위를 동원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자백은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 재심 등 후속 조치를 권고했다.

이에 J씨는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이례적으로 일반 형사사건에 대해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이에 다시 원점에서 시작됐고, 1심 춘천지법 제2형사부(재판장 정성태 부장판사)는 2008년 11월 강간치사, 살인 혐의로 기소된 J씨에게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은 피고인이 범인이라는 확신을 주기에는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신의 눈을 갖지 못한 재판부로서는 감히 이 사건의 진실에 도달했다고 자신할 수는 없다"며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이 규정하고 있는 적법절차원칙에 따르면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은 증거로 사용될 수 없거나 믿을 수 없는 것이어서, 그것들만으로는 피고인의 유죄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 수사 과정에서 자신이 마땅히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와 적법절차를 보장받지 못한 채 고통을 겪었던 피고인이 마지막 희망으로 기대었던 법원마저 적법절차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민이 부족했고 그 결과 피고인의 호소를 충분히 경청할 수 없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어떠한 변명의 여지도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검사가 항소했으나 서울고법 제11형사부(재판장 이기택 부장판사)도 2009년 2월 J씨에 대한 "무엇보다 피해자가 사망한 시각에 피고인이 집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참고인들의 진술도 경찰의 강압 또는 회유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면, 공소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1심 무죄 판단을 유지했다.

사건은 검사의 상고로 대법원으로 올라갔으나, 대법원 제1부(주심 안대희 대법관)도 27일 파출소장의 초등생 딸을 성폭행한 뒤 목 졸라 살해한 혐의(살인)로 기소돼 15년간 복역한 J씨에 대한 재심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경찰 조사단계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로 인해 임의성 없는 자백을 하고, 그 후 검사의 조사단계에서도 임의서 없는 심리상태가 계속돼 동일한 내용의 자백을 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따라서 이 사건 공소사실을 자백하는 내용의 검사 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는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또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주된 증거인 참고인들의 진술이 번복돼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봐야 하고, 나머지 관련자들의 진술 또는 증언도 공소사실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가 될 만한 내용도 아니다"며 "이에 공소사실에 대해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하여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을 유지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누명 #옥살이 #무기징역 #재심 #모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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