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어도 벌어도 '적자' 가계부... 누구 탓일까

[똑똑한 생활경제⑦] 만져 보지도 못하고 나가는 '고정지출'이 문제

등록 2011.10.29 14:06수정 2011.11.22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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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라는 단어만 보면, '어렵다'는 생각에 '경직' 되십니까. 은행에서 적금이나 예금을 들 때, 보험회사 직원과 마주할 때, '도대체 뭘 들어야 하는 거야'란 생각에 머리가 아프십니까. 하지만 이젠 걱정하시 마세요. '똑똑한 생활경제'가 당신 옆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줄 거니까요. 오마이뉴스에선 앞으로 매주 '똑똑한 생활경제'라는 타이틀로 '생활경제' 전반에 대해서 다룹니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연합뉴스

부부싸움의 원인 중 1순위는 뭘까? 물어보나 마나 돈 문제일 것이다. 벌어오는 돈이 너무 적다는 근원적인 불만, 그게 아니라 살림을 잘 못해서 그렇다는 반론, 남편과 부인의 이 생각 차이는 대부분의 가정에 드리워져 있다.

만져 보지도 못하고 없어지는 돈이 80%

살림을 잘 못한다는 것은 돈을 잘못 쓴다는 뜻. 즉, 불필요한 곳, 중요하지 않는 곳에 돈을 많이 쓴다는 의미이다. 일종의 과소비다. 집에서 살림을 맡은 주부들이 아마도 그 비난의 주요 대상일 것이다.

남편이 대기업 차장인 A씨, 세금을 제하면 한 달 수입은 450만 원 정도이다. 적지 않은 소득이다. 남편도 부인도 그건 인정한다. 그런데 매달 겨우 생활만 가능하지 저축을 할 수가 없다. 오히려 마이너스 통장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남편은 왜 우리 집은 저축이 없는지, 부인이 살림을 잘 못하고 과소비를 하는 건 아닌지 은근히 불만을 드러낸다.

A씨 역시 답답하긴 마찬가지이다. 알뜰하게 살아보겠다고 차비를 아끼기 위해 웬만하면 자전거로 이동하는 A씨다. 마트에 가면 충동구매를 자꾸 하는 것 같아 마트도 끊었다. 아이들, 남편 옷 말고는 자기 옷은 사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남들은 다 스마트폰인데 A씨는 구식 핸드폰에 요금도 한 달에 2만 원을 넘어본 적이 없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하길래 우리 집은 적자일까?

왜 이런 결과가 나오는지 과소비 탓을 할 것이 아니라 A씨 가정은 스스로의 지출구조를 분석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지출의 문제는 사실 주부의 탓이라기보다는 구조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출구조의 분석은 매월 고정지출, 즉 내가 만져 보지도 못하고 없어지는 돈들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A씨 가정의 매월 고정지출을 따져 보자. 집을 사기 위해 받은 대출금 1억 원이 있다. 이 대출의 원리금 상환이 월 75만 원이다. 아이들 둘의 사교육비가 한 명당 50만 원씩 100만 원이다. 여기에 네 식구 보험료는 35만 원, 양가 부모님 용돈이 매월 40만 원이다. 차 할부금 매월 50만 원, 관리비 20만 원, 통신비 15만 원, 남편 용돈 30만 원. 여기까지 모두 합하면 모두 365만 원이다.


즉, A씨가 만져 보지도 못하고 빠져나가는 이 고정지출을 빼면 A씨가 생활비로 쓸 수 있는 돈은 한 달에 85만 원밖에 남지 않는다는 말이다. 생활비를 신용카드로 쓰는데 한 달에 신용카드 대금이 적어도 70만~80만 원은 나온다. 카드 대금까지 빠져나가고 나면 이제 통장에 남는 돈은 거의 없게 된다. 그러니 명절이나 가족 경조사가 있는 달에는 마이너스 통장에 손을 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A씨의 경우 매월 고정비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0%에 달한다. 나머지 20%가 수시로 쓰는 생활비 즉 식비와 생활용품, 의류비 등인데 이런 돈을 절약하는 것은 한계 있다. 이걸 10% 줄인다고 해도 절감효과는 사실 10만 원 내외이다. 결국 살림하는 사람이 과소비할 수 있는 돈도, 절약할 수 있는 돈도 따지고 보면 그렇게 많지 않다.


고정지출 줄이기, 생각의 전환 필요

 고정지출을 줄여야만 흑자 가계를 만들 수 있다. 고정 지출에는 사교육비가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고정지출을 줄여야만 흑자 가계를 만들 수 있다. 고정 지출에는 사교육비가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연합뉴스
결과적으로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적자가계부를 흑자로 돌리기 위해서는 수시 생활비가 아니라 고정지출에 손을 대야 한다. 그런데 고정지출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것을 줄이는 것도 쉽지만은 않다. 고정지출에 손을 대려면 아주 큰 결단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교육비부터 보자. 아이 하나당 50만 원, 학원 한두 군데 보내는 건데 이것마저 안 하면 아이가 뒤처질 것 같아 두렵다. 담보대출 이자, 지금 집을 전세 주고 더 작은 집에 전세로 옮기는 것도 방법이나 그러면 작은 집에서 살아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차 할부금을 포기하는 건 차를 포기하고 살아야 하는 건데 요즘 차 없이 사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그나마 부모님 용돈을 줄여야 하나 생각하니 불효자가 된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보험료를 덜 내자니 일부는 해지를 해야 하고 지금까지 낸 돈이 아까워 그건 또 하기 싫다.

모두에게 '당연히 이 정도는 하고 살아야 한다'라는 기준이 있다. 우리 사회가 발전하고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이 기준이라는 것도 함께 높아졌다. 소득이 10% 늘면 가지고 싶은 것도 10% 늘어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 기준에 맞춰 살아가다 보면 문제는 내가 만져보지도 못하고 빠져나가는 고정비가 급격히 불어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보지 못하고 그저 내가 과소비를 해서 우리 집 가계부가 마이너스라고 생각하는 건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다.

중소기업에서 이사로 재직하는 지인이 있다. 맞벌이라 부인과 함께 연 1억 원 정도 소득을 올리는 분이다. 이분은 아들이 군대에 가자 17평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부인과 둘이 사는데 넓은 집은 필요 없다는 소신을 지킨 것이다. 집이 작으니 불필요한 살림살이도 다 정리되었단다. 이 정도의 결단을 내릴 수 있어야 고정지출을 줄일 수 있다. 지금의 지출 구조 속에 머물러 있으면서 개선점을 찾는 것은 반찬 값 줄여서 아이들 대학 등록금 마련하겠다는 불가능한 목표에 도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 현재 상황에서 우리 집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싶다면 고정비를 줄이는 결단이 필요하다. 사교육비, 주거비, 보험료, 차 유지비, 보험료 등 물론 다 필요하고 포기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고방식의 전환, 가치의 전환이 선행되어야 한다. 편리함과 욕망에 이끌려 살 것이냐 불편함을 감수하고 실속을 챙길 것이냐, 더 늦기 전에 무언가는 선택을 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지영 기자는 현재 (사)여성의일과미래 재무상담센터에서 경제교육과 재무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지영 기자는 현재 (사)여성의일과미래 재무상담센터에서 경제교육과 재무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돈 #지출 #돈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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