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용
안근혁씨의 턱에 희끗한 수염이 까칠했다. 덤프트럭 기사인 그는 운전대를 놓고 대명리조트 후문에서 8시간 노동과 기본 생활 단가를 요구하며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30일이 다 돼간다.
"사측이 노조를 인정 안해서 교섭이 쉽지 않아요. 교섭공문을 세 번씩 보냈는데도 안 만나주다가, 리조트 앞에 집회 신고를 하니까 그제야 차장이라는 사람이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하는 얘기는 결국 똑같아. 1994년도 단가로 임금을 주겠다는 거야. 10시간, 12시간씩 일하는데도."노숙농성이 힘들지 않느냐는 물음에 안씨는 답했다.
"어쩌겠어요.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 처지가 달라진 게 없는데..."안씨가 일하던 곳은 대명레저산업에서 발주하고 대명건설이 공사를 맡은 홍천 소노펠리체C.C 골프장 조성 현장이다. 아침 8시부터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저녁까지 덤프트럭을 몰았다. 시간당 2만 3000원을 받고 평균 10시간씩 일한다. 하루 23만 원을 벌어도 유류비, 타이어 교체비, 보험료, 차 유지비, 할부금 등, 내야 할 돈이 한 달에 수십~100만 원에 달한다.
날씨가 궂거나 아파서 일을 못 하면 수입은 줄지만 이러한 지출비용은 그대로다. 여기에 건설산업의 고질적 병폐인 다단계 하도급구조가 작동한다. 여러 하청업체들을 거치며 수수료, 알선료를 떼인다. 결국 임금은 반토막이다. 이마저도 제때 지급되지 않는다. '쓰메끼리'라는, 임금을 30~50일씩 늦게 지급하는 관행이 여전하다. 3~6개월짜리 어음으로 임금을 결제해 줘서 수수료는 4%씩 떼고 돈은 6개월 동안 안 주는 곳도 여전히 많다고 안씨는 말했다. 안씨는 40년 동안 덤프트럭을 몰았지만 자녀 셋을 키운 돈은 팔할이 빚이었다. 자녀들은 모두 결혼해 떠났지만 그는 덤프트럭을 떠나지 못했다. 빚을 갚아야 했다.
"마이너스 인생이죠." 2010년 말 노동부와 국토해양부는 각각 '건설근로자 고용개선 대책' '건설근로자 임금 제때, 제대로 받기' 등 대책을 추진했다. 그래도 바뀐 건 없다. 전국건설노조는 2010년부터 약 1년간 집계한 건설노동자의 유보, 체불임금은 무려 272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건설기계노동자들의 체불은 노동부 통계에조차 잡히지 않는다. 사장이 도망치거나 회사가 부도가 나도, 이들의 임금을 보장할 법은커녕 하소연할 곳조차 없다. 건설기계노동자들이 '노동자가 아니라서'다. 실제 130억 원의 임금을 체불한 사장이 미국으로 도피해 호화생활을 누린 성원건설의 사례가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임금뿐 아니라 노조마저 뺏길 처지다. 2009년 정부는 전국건설노조에 "모든 레미콘, 덤프트럭 운전자를 노조에서 '자발적 제명'하고,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노조 설립인가를 철회하겠다"고 했다. 올해 3월 국제노동기구(ILO)가 한국 정부에 레미콘, 덤프트럭 운전자 등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 보장과 관련법 개정을 권고했으나 정부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는 노동자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 명확하다. 이들에게 노동기본권을 부여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누구나 특수고용직이 될 수 있는 시대이들이 주장하는 제대로 임금을 받을 권리, 안전하게 일할 권리, 단체행동에 나서 부당함에 저항할 권리, 모든 것이 결국 한 마디로 귀결된다. '노동권'이다. 정부가 이를 외면하고 낸 모든 '보호'대책이 실효성 없는 구호에 그쳤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그 노동권을 인정받고자 차가운 길바닥에 앉은 재능교육 학습지 노동자들의 농성이 1400일을 넘겼다. 그들과 같은 특수고용직은 전국 200만 명으로 추산되고, 그 수는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사업자등록증을 만들어 계약만 맺으면 누구든 특수고용직이 될 수 있다. 이 불특정다수의 미래가 '차가운 길바닥'이 아니려면, 정부와 사회는 제대로 대답해야 한다. 특수고용직은 노동자인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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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노동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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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 줄 테니 차문 열라? 사람 할 짓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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