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가 18일 오전 범외식인 10인 결의대회가 열리는 잠실종합운동장을 방문해 참석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10.26 재보선을 앞둔 2011년의 한국은 그렇게 뒤틀린 자신의 자화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네거티브이든 후보검증이든 그 과정에서 드러난 한국사회의 속살은 청산되지 못한 역사의 짐이 얼마나 무겁게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지, 새삼 그 무게감을 느끼게 해 준다.
먼저 '어느' 유력후보가 '또 다른' 유력후보에게 제기한 의혹은 병역기피 목적 호적 쪼개기, 학력위조, 수상한 기부금, 월세 등이었다. 이에 맞서 '또 다른' 후보가 '어느' 후보에게 제기한 의혹은 건물투기, 유흥주점 월세, 2캐럿 다이아, 부친 학교 감사 제외 청탁, 부친 학교 재단 이사등재 등이었다.
그런데, '어느' 후보 쪽의 검증 공세는 곧바로 역풍을 맞았다. 왜냐하면 '어느' 후보가 속한 정당과 그 정당이 옹호하는 현 정부 각료들 중에는 병역이나 재산, 학력위조, 위장전입 같은 의혹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강도가 또 다른 도둑놈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있으나, 처벌받지 않은 강도가 다른 도둑의 처벌을 주장할 때 우리는 뭔가 정의롭지 못하고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낀다.
미심쩍은 방법으로 군대 안 간 사람들이 병역비리를 파헤치겠다고 나서고, 차떼기 하거나 기부금 가로챈 정당에서 남의 기부금 문제 삼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너무나 선명한 데자뷰를 떠올렸을 것이다.
FTA 문구 하나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는 분들이 '어륀쥐'를 가르치려 들더니, 위장전입 같은 '별'을 하나씩 달고 있는 분들은 하나같이 목소리를 높여 준법과 질서를 강조하고 나섰다. 마침 현직 대통령 직계존비속의 범죄행위에 해당하는 내곡동 사건이 터지면서 사람들은 '어느' 후보의 몇 년 전 봉하 '아방궁' 관련 발언을 떠올렸다.
청산되지 못한 역사는 어떻게 현실을 왜곡했나청산되지 않은 역사, 잘못에 대한 즉각적인 응징이 이루어지지 않은 결과는 흉악범이 경찰을 처벌하는 풍경을 만들어 놓았다. 동화책에나 나올법한 이 이야기는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 앞잡이들이 권력을 잡고서 독립투사들을 때려잡은 우리의 비극적인 역사와 너무나 닮았다.
'어느' 후보의 의혹 중에는 학력 허위기재 의혹처럼 실무자의 단순실수도 있고, 또 '또 다른' 후보 측에서도 인정했듯이 배우자 병역비리 의혹 처럼 비극적인 한국현대사의 파편에 의한 것도 있다. 고가의 피부클리닉에 다닌 것은 비록 정서적으로 거부감이 생길 수도 있지만 그 자체가 위법하거나 심대한 부정비리는 아니다. 내 생각에 정말로 중요한 의혹은 '어느' 후보가 부친의 비리 사학재단 이사로 계속 재직하고 있었고, 이를 숨겨왔다는 점이다.
'어느' 후보는 명문대 법대를 나와 판사를 거쳐 국회의원에 이른, 한국사회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거쳐 온 분이다. 학생들을 사실상 강제 노역시킨 비리사학의 2세가 이렇게 막강한 권세를 누린다면 비리사학의 잘못이 '응징'될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실제로 '어느' 후보는 자신의 국회의원직을 이용하여 사학법 개정 반대에 적극적이었고, 감사 제외를 청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것은 선친대의 부정비리가 응징되어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대를 이어 구조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심각한 문제이다. 겉모습만 보기에는 마치 어느 영화에서 조직폭력배가 자신의 방패막이를 만들기 위해 조직원을 경찰학교에서부터 침투시킨 것을 연상시킨다. 우리는 이것이 왜 그토록 심각한 문제인지를 영화 <도가니>를 통해 알 수 있다. 죄를 지은 사람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기는커녕 다시 교단으로 돌아와 버젓이 학생들에게 못된 짓을 되풀이하는 끔찍한 상황이 구조적으로 고착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