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용 프로그램 개발 및 공급업체 엑스비전의 홈페이지
엑스비전테크놀로지
그러나 이러한 제도의 개선보다 더욱 큰 문제는 장애인의 능력에 대한 '사회인식'이다. 앞서 이야기한 시각장애인용 스크린리더인 '센스리더'를 개발·판매하고 있는 벤처기업인 엑스비전의 김정호 이사는 <작은책 11월호>에서 창업 과정의 에피소드를 밝힌 바 있다.
김정호 이사는 당시 시각장애인 4명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벤처회사를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해 서울 문래동 철공소 골목에 허름한 사무실을 하나 얻었다. 그리고 그들은 사업자등록을 하기 위해 관할세무서인 영등포세무서를 찾았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담당 공무원은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느냐? 실제 사업을 할 능력이 없으면 사업자등록이 불가능하다"며 사업자등록 자체를 거부했다. 당시 창업 멤버들은 이미 스크린리더를 개발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이에 대해 "시각장애인은 소프트웨어 개발회사를 창업할 수 없도록 법에 규정돼 있느냐"며 따지고 나서야 겨우 사업자등록증을 발부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은행에서는 시각장애인이 '관련 서류를 직접 읽거나 서명할 수 없다'는 이유로 대출 심사를 거부하거나 관련 금융상품에 가입조차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업체 개설 후 그들이 법인통장을 만들려 은행에 들렀을 때 경리 담당직원은 "시각장애인이므로 안 된다"고 통장 개설을 거부했다. '법인 통장은 개설 후 금융거래에서 매우 큰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 개설 거부 이유의 전부였다. 결국 은행 본점에 항의도 하고, 김정호 이사의 동생(비 시각장애인)을 엑스비전의 경리직원으로 채용한다는 것을 전제로 겨우 법인 통장을 개설할 수 있었다.
당시 엑스비전은 창업 초기였기 때문에 경비를 줄여야 했다. 대표를 포함한 전체 근무자 4명이 모두 시각장애인이었기 때문에 컴퓨터 모니터가 필요 없어 경비 절약 차원에서 모니터를 1대만 구입했다고 한다. 스크린리더를 이용하면 모니터 없이 스피커만으로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덕분에 필자는 가끔 누워 무선 키보드로 인터넷을 즐기는 게으름을 피우기도 했다).
그런데 영등포세무서 담당공무원은 시각장애인들이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는 것을 믿지 못했었나 보다. 그는 회사를 실사하기 위해 사무실을 찾아가보니 시각장애인들이 벽만 보고 뭔가 하면서 앉아 있더라며 바로 사업자등록을 취소해 버렸다. 폐업의 이유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려면 컴퓨터가 있어야 하고, 컴퓨터를 이용하려면 모니터가 있어야 하는데 모니터가 없으니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없다. 사업 목적을 이행할 수 없다'가 전부였다.
하지만 엑스비전은 우여곡절 끝에 사업자등록을 지켜냈다. 이 회사는 현재 전체 직원 12명 중 8명이 시작장애인이며 연 매출이 8억 원에 이르는 견실한 벤처기업으로 성장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사회적 인식 개선장애인이 사회에서 실제로 부딪히는 문제는 위와 같은 '잘못된 인식'일 것이다. 도쿄대 첨단과학기술연구원 베리어프리(Barrier Free)부문의 국제협력연구원으로 있는 전영미(42)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실 장애인들은 일반인의 상상 이상의 능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는 그것에 주목하지 않습니다. 현재 장애인의 문제는 여러가지 제도 보완으로 해결하기보다 장애인에 대한 정확한 인식의 개선으로 해결해야 합니다.이는 단순히 사회 계몽으로 풀 수 없는 문제입니다. 어릴 적부터 교육 과정 속에 '장애인에 대한 이해 과정'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일본의 경우, 초등학교 4·5학년 때 점자나 수화를 모든 학생이 배울 수 있게 합니다. 이렇게 하면 점자나 수화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높아지게 되면 어느 분야에 진출하게 되더라도 자신의 분야에서 고령자나 장애인을 올바르게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이들을 위한 배려가 자신의 직업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도 있습니다.단순히 제품이나 건축물 등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법이나 예술 등과 같은 부분에서도 고령자나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사회 전체적인 비용도 줄어들 수 있습니다. 이미 만들어진 제도를 장애인들을 위해 바꾸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정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제도 및 사회 시스템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이번 고용노동부의 보조 공학기기의 장애인 사업주 지원에 대한 제도 개선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정부 당국은 단편적 지원보다는 장애인들이 요구하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번 제도 개선이 그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일본 전문 뉴스 JPNews(http://jpnews.kr)에도 송고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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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1급 시각장애인으로 이 땅에서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장애인의 삶과 그 삶에 맞서 분투하는 장애인, 그리고 장애인을 둘러싼 환경을 기사화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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