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 광장. 오른쪽 건물 뒤편의 옛 한국일보 자리에서 정도전이 이방원 측에게 살해됐다.
김종성
제2기인 우왕·탕왕·문왕·무왕 시대에는 임금과 신하가 모두 현자였다. 성자보다 한 단계 떨어진 현자의 시대에 불과했지만, 이 시대 역시 양측의 협력에 의해 태평성대가 펼쳐졌다.
그런데 제3기인 패자의 시대 즉 춘추전국시대부터 양상이 바뀌었다. 이전 시대만 해도 임금과 신하의 질이 똑같았지만, 이때부터는 임금의 질이 신하보다 떨어졌다. 이것은 물론 정도전의 논리다.
제3기에는 덕이 아닌 패(覇) 즉 '힘에 의한 권력'을 추구하는 자들이 왕위를 차지했다. 그래서 이 시대에는 임금이 신하에게 전권을 맡길 때만 나라가 잘 운영될 수 있었다. 이 역시 정도전의 논리다.
정도전이 역사를 3기까지만 구분한 것은, 자기 시대가 제3기에 해당한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서였다. '치전' 편의 이어지는 부분에서, 그는 본심을 좀더 명확히 드러냈다.
"만약 임금이 중간 정도의 자질을 갖고 있을 경우, 사람(재상)을 잘 얻는다면 나라가 다스려질 수 있지만, 잘못 얻는다면 나라가 어지러워진다."이것이 정도전이 전하고 싶었던 핵심 메시지다. "만약 임금이 중간 정도의 자질을 갖고 있을 경우"란 표현은, 지금 시대(정도전의 시대)의 임금들은 중간 정도밖에 안 된다는 그의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패자의 시대이므로 훌륭한 재상이 국가경영을 맡아야만 나라가 잘 굴러갈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사실, 제1기에는 임금·신하가 모두 성자였고 제2기에는 양측 모두 현자였으며 제3기부터는 임금의 질이 떨어졌다는 정도전의 주장은, 사대부 중심주의를 관철시키기 위한 논리에 불과했다. 상당한 억지가 들어간 논리다.
그런 억지 논리를 법전에까지 담을 수 있었던 것은, 정도전과 사대부들이 자신감이 넘쳤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힘으로 새로운 나라를 건설했으니,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그런 '오만함'이 <조선경국전>에 반영됐던 것이다.
"누가 봐도 내가 좀 죽여주잖아/ 둘째가라면 이 몸이 서럽잖아/ …… 어떤 비교도 난 거부해/ 이건 겸손한 얘기"라는 2NE1의 <내가 제일 잘 나가> 가사처럼, 건국 직후의 정도전과 사대부들은 자신들이 제일 잘 나가는 사람들이라고 자부했다.
사대부의 대표주자인 정도전은 '오만함'이 충만했기에, '우리가 제일 잘 나가!'라는 내용을 유언서 같은 데에 남길 필요가 없었다. <뿌리 깊은 나무>에서는 정도전이 사대부 중심주의를 유언서에 남겼다고 했지만, 실제로 그는 <조선경국전>에 그것을 기록해놓았다. 그것은 드라마에서처럼 은밀하게 논의될 사안이 아니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
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