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6일 오후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의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시청 서소문별관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잠시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생각에 잠겨 있다.
유성호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무상급식 반대는 정치에 대해 대충 알고 있는 우리 서민들에게는 참으로 놀라운 사건이었다. 흔히들, 오세훈 시장은 서울시 대다수의 구민들에게는 지지를 받지 못했지만, '부자동네 강남 3구'의 몰표를 받아서 시장이 되었다고 해서 서울시장이 아닌 '강남시장'이라고 부른다.
그가 속한 한나라당은 전 정부의 '서민 중심의 조세 정책'을 뒤엎고 비즈니스-프렌들리(기업 친화적) 조세 정책으로 '부자 감세' 정당이라는 오명(또는 광명(光名), 그러나 누명은 아닌 게 확실한 듯)을 뒤집어 쓰고 있다. 그런 그가 모든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급식을 지원해야 한다는 정책에 분명히 반대하며 "부자 학생들은 제 돈을 내고 먹고 (정확히 말하면 부자 부모의 돈을 내고), 가난한 학생들에게 먼저 무상급식의 혜택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인으로서 그의 속내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많았지만 그가 아직 미성년인 초중등 학생들의 순진무구한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것은 분명하다.
사실 서민층 학생들에 대한 급식 지원이 없던 건 아니다. 그 전에도 생활보호대상자 가정 학생들이나 차상위계층 학생들에게는 급식비를 지원했고, 심지어 방학 때에도 급식 카드 등을 주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네 짜장면 집에서 점심을 먹도록 지원하는 일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혜택'을 받는 아이들은 그런 '공짜밥'을 좋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이들 말로 '쪽팔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선생님들은 나름대로 꽤 머리를 써서 누가 급식 지원을 받는지 모르도록 여러 학생들을 교무실로 불러서 그 중 해당 학생에게만 급식 지원 서류가 통과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기도 하고, 그에게만 몰래 문자를 보내기도 하는 등 여러 방법을 은밀히 써보지만 아이들은 누가 '공짜밥'을 먹는 녀석인지 귀신같이 알았고, 그 소문은 금세 퍼졌다.
아무리 좋아하는 짜장면이라도 방학 때 따로 가서 "내가 공짜밥 먹는 사람이다"라고 증명이라도 하듯이 중국집에서 급식 카드를 내미는 학생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심지어 학교에서 우유 배식을 할 때도 무상으로 지원 받는 아이들은 일부러 먹지 않아서 교무실에는 아까운 우유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이들이 "쪽팔리다"는 이유로 경제 형편이 어려운 부모님의 고충을 '외면'하는 것을 철없는 초등학생들의 어리석음으로 치부한다면 그건 완전 오산이다. 선생님보다도 덩치가 더 크고 세상을 알만큼 아는 것 같은 고등학생들도 몇십만 원 하는 수학여행비 지원에서도 이리저리 뺀다. 담임 선생님이 부모님과 통화해 보면 부모님은 "미안하긴 한데 조금이라도 지원해 주시면 고맙지요"라는 분들도 여럿 계신다. 그러나 학생들은 차라리 이런저런 핑계로 수학여행에 빠질 망정 선뜻 지원해달라고 하지 않는다. 역시 "쪽팔리기" 때문이란다. 한자어로 표현하자면 "염치가 있는 녀석들"이라 "염치없는 짓"을 못하는 것이다.
쪽팔림을 알아야 할 건 누구? 정치인들, 특히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정말 이런 '쪽팔림'을 몰랐고, 모르는 듯하다. 우리같은 일반 서민들이라면, 무상급식을 막으려다가 주민들의 호응을 받지 못해 서울시장이 사퇴한 마당에 다시 그가 속한 정당에서 서울시장 후보를 내세운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쪽팔려서'라도 이번 보궐 선거는 후보를 내지 않고 자중하다가 다음 번 정식 선거에서 보궐선거로 당선된 시장이 정치를 잘 못할 경우 그때 후보를 낼 것 같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우리같은 서민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그들은 쪽팔린다는 게 무언지 모르고 서민들은 정치란 게 무엇인지 잘 몰랐던 듯하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교육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듯하다. 앞에서 잠깐 스쳐지나갔듯이 대한민국에서 교육은 권리이자 의무이다. 모 연구소장님이 자주 이야기하시는 국방의 의무를 예로 들어보자. 대한민국 20세 이상 성인 남자라면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국방의 의무를 해야 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