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드라마 <계백>. 의자왕(조재현 분)과 계백(이서진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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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계백>은 계백 장군을 통해 백제 역사를 재조명하겠다는 취지를 표방한 드라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드라마는 계백 장군도 올바로 조명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백제사를 올바로 조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중반을 넘어선 현재, 이 드라마는 심각한 자가당착에 빠져 있다. '계백 띄우기'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도리어 백제사를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계백 띄우기'가 '의자왕 죽이기'로, 나아가 '백제사 죽이기'라는 엉뚱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계백>의 '의자왕 죽이기'는, 의자왕의 핵심 업적 중 하나를 계백의 업적으로 바꿔치기한 데서도 드러난다. 의자왕의 핵심 업적이란 즉위 이듬해인 642년에 선덕여왕을 상대로 40여 개의 신라 성(城)을 한 번에 빼앗은 사건을 말한다.
드라마에서는 계백이 이미 무왕(의자왕의 아버지) 때부터 대(對)신라 전쟁에서 전공을 세워 국민적 영웅이 됐다고 설정했다. 특히 의자왕 즉위 이후에는 약 40개의 신라 성을 연속으로 공략하는 일대 성과를 이룩했다. 이로 인해 드라마 속의 백제인들은 통일의 기대감에 한껏 들떠 있다. 계백은 군신(軍神) 마르스에 비견될 만한 '전쟁의 신' 그 자체다.
신하의 업적은 임금의 업적으로 간주된다. 신하가 세운 전공이 임금의 전공으로 기록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642년에 의자왕이 거둔 업적이 실은 부하 장수의 업적이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삼국사기> '백제 본기' 의자왕 편에서는 의자왕 2년 7월(642.8.1~8.30)에 벌어진 사건을 두고 "가을 7월, 왕이 군대를 직접 거느리고 신라 미후성 등 40여 성을 함락했다"고 말했다. 40여 개의 신라 성을 빼앗은 주역이 의자왕의 부하 장수가 아니라 의자왕 자신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마르스'는 계백이 아니라 의자왕이었던 것이다.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은 의자왕을 어떻게든 폄하하려 했던 인물이다. 그런 김부식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정도로, 의자왕은 군사 방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1개월 사이에 40여 성을 점령하는 것은 세계 전쟁사에서도 쉽게 찾을 수 없는 진기록이다.
전쟁에만 신경을 쓰는 직업 군인이었다면 모를까, 자신이 수도를 비운 사이에 쿠데타가 발생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둬야 하는 통치자가 최전방에서 그런 대기록을 세웠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드라마 <계백>에서는 부하의 업적이 의자왕의 업적으로 처리되었을 것이라고 상상했지만, 의자왕은 그런 전공을 세울 만한 역량을 분명히 갖고 있었다.
변변한 전공 없는 계백, 왜 김부식의 총아가 됐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