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계예술대학 캠퍼스에는 교육과학기술부의 부실대학 선정에 항의하는 천막이 설치되어있다.
홍현진
'연어구이 페스티벌'이 열리는 지난 7일,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추계예술대학교(이하 추계예대) 캠퍼스는 한산했다. 학교 정문 앞에 붙어있는 '추계 지금 야단났어'라는 발랄한 문구의 포스터가 무색했다.
'연어구이 페스티벌'은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 9월 5일 추계예대를 '부실대학'으로 선정하자 이에 반발한 추계예대 졸업생들이 준비한 축제. '집나간 연어(졸업생)들도 돌아오게 만드는 교과부'라는 부제를 갖고 있다. 캠퍼스 곳곳에는 졸업생들과 재학생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운동장에 있는 농구대 앞에는 교과부 장관 명의로 '청년인력의 정신에 획일적 사회구조와 무관한 이념을 심어준 불순함이 인정되어 철거를 결정한다'는 내용의 '퇴출공고'가 붙어 있었다. 교과부가 취업률이라는 획일적인 잣대로 '순수예술대학'을 구조조정 대상으로 지정한 것을 비꼰 것이다.
'집나간 연어'들은 돌아왔지만 정작 재학생들은 조용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뿔난 추계인들(뿔추)'에서 활동하고 있는 학생들의 수. 판화과 4학년 이현정씨에 따르면 현재 15명 정도가 '뿔추'에 속해 있고, 이 가운데 언제든 활동 가능한 학생은 5~6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추계예대생은 1200명이다. 이씨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술가들이 원래 좀 모래알 같아요. 자기 성향이 강하고 활동이 개별활동이다 보니까 .이 와중에도 '내 살길이 더 힘들어졌구나. 내 그림 더 열심히 그려야지. 학교가 내 인생 책임져줄 것도 아니고 내가 잘 되자'라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부실대학'으로 선정된 지 한 달, 대학 본부 측은 '전국 1위'였던 등록금을 2012년부터 10% 인하하고, 재학생에게 주는 장학금은 2학기부터 15% 늘리기로 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추계예대는 2014년까지 장학금 확충과 전임교원 확보 등 직접 교육비로 80억 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씨를 비롯한 '뿔추'들은 이러한 자구책이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고 본다. 예술대를 '취업률'로 평가하는 기준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지난 한 달간 '뿔추'들은 '예술대 평가기준 수정'을 요구하면서 서울역, 광화문, 인사동 등에서 퍼포먼스와 함께 서명운동을 벌였다. 이렇게 해서 모은 서명지는 9월 30일 현재 2300여 장. 목표치는 1만 장이다. 이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순수예술이 뭔지, 실용예술, 응용예술이 뭔지도 모르는, 그런 무지한 사람들이 교과부에 앉아서 대학구조조정을 하고 있어요. 지금 다른 학교들 보면 '경쟁력'이 없다는 이유로 순수예술학과가 사라지고 있어요. 순수예술학과가 학교 점수를 깎아먹는 골칫거리가 된 거죠. 이런 식으로 가게 되면 순수예술학과가 다 없어질지도 몰라요." 또 다른 '뿔추' 이가은(서양화과 4)씨 역시 "정부가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다고 해서 예술을 쓸모없는 것처럼 취급하고 있다. 예술을 도대체 어떤 식으로 보고 있기에…"라고 한숨을 쉬었다.
한 선배의 직설 "먹고 살려면 그림 그리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