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철 회장이 권력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방법

등록 2011.10.14 19:31수정 2011.10.14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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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쪽은 주었다고 하고, 다른 한 쪽은 받지 않았다고 한다. 수년간 가까운 사이였다고 하면, 그런 사람을 모른다고 하고 만난 적도 없다고 한다. 이 쯤 되면 수사 과정에서 잘 쓰인다는 거짓말탐지기라도 동원해서 어느 편이 사실을 얘기하고 있는지 알아보아야 할 것인데, 뇌물사건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런 상황에서 거짓말탐지기를 이용해 수사했다는 얘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하긴 수사와는 달리 형사재판에서 거짓말탐지기의 검사결과는 거의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결국 경찰은 피의자의 자백을 얻어내기 위한 일종의 압박수단으로 거짓말탐지기를 활용하는 셈인데, 그렇다면 고위 공직자가 대상인 뇌물사건에서도 이것을 이용하지 못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SLS그룹이라는 기업의 이국철 회장이라는 분이 요즘 연일 머리기사를 장식하고 있다. 그 내용이란 우리가 지금까지 여러번 들어본 줄거리인데, 잘 나가는 기업의 회장이 유력 정치인들에게 금품을 제공해 왔으며, 정권이 바뀐 이후 이 기업인에 대한 보복성 수사가 진행되었고 그 결과 그의 기업은 파산을 면치 못하게 되었으며, 이에 대한 마지막 저항으로 이 기업인은 현 정권의 고위 공직자 가운데에서 자신이 관리(?)해 온 사람들을 폭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 공직자들은 이 기업인의 주장을 부인하였는데, 관련자에 포함된 현직 검찰총장까지 나서서 믿을 수 없다던 이 사건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흥미로운 변수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 하나는,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는 일부 언론과 야당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애초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던 검찰이 적어도 겉으로는 적극적인 자세로 돌아섰다는 점이다. 이것은 물론 이른바 '측근비리'를 엄정하고 신속하게 수사하라는 청와대의 입장이 전적으로 반영된 것이다. 일부의 추측대로, 정권의 입장에서 임기 말 연이은 비리의 폭로로 인한 권력의 누수를 방지하고, 특히 다른 문제들, 예컨대 소위 '자원외교'에 묻혀있는 주가조작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이번 폭로의 대상자들을 희생양으로 삼기로 했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이대로 간다면 신재민 전 차관이나 박영준 전 국무총리실 차장, 임재현 현 청와대 정책홍보비서관 등에 대한 조사는 불가피할 것이고, 그 결과에 따라 일부 혹은 전부에 대한 사법처리도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국철 회장이 지금까지의 폭로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비망록'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인데, '군사정부 시절보다 더하'게 '(권력자가 국민을) 숨기고 속이고 등쳐먹'었다는 그 내용이 무엇인지 자못 궁금해진다. 광주의 어느 학교에서는 십 수 년에 걸쳐 선생님들이 가녀린 학생들을 성추행해왔고, 서민들을 위한다던 저축은행들은 부실공사의 시공기업에 수십 억, 수백 억의 돈을 대출해줘 결국 소액 예금자들에게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넘기는 일보다도 더 충격적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그의 주장대로라면 이 비망록에는 현 정권 이후 검찰과 정치인, 경제인들의 권력비리가 담겨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제 권력의 반응은 무엇일까? 그의 주장을 어느 정도 받아들여 문제가 심각한 인사들에 대해서는 법적 처리를 진행하는 것, 아니면 다른 관심사를 찾아내거나 혹은 그에게 어떤 다른 대가를 지불하는 등 그의 폭로를 무력화시킬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 이도저도 아니라면 시간을 끌면서 그의 약점을 찾아내어 철저하게 응징하는 것?

 

이 회장은 자신의 폭로에 검찰의 비리가 담겨있는 만큼 검찰을 믿을 수는 없고, 결국 특검이 필요하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미진한 검찰의 수사를 대신하기 위해 시도되었던 특검 또한 그 한계를 보여준 경우가 여러 번이었다. 그래서 그는 계속해서 언론에 대한 폭로에 의존한다. 이것은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가 특별히 정당해서가 아니라 언론의 뒤에는 국민, 시비를 가리고 선악을 구별하여 부정의한 자들을 심판할 수 있는 주권자로서의 국민이 있기 때문이다.

 

다윗은 골리앗의 급소를 찾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윗은 신의 도움이 있을 때에만 골리앗을 이길 수 있다. 더욱 진실하고 겸손한 태도로 국민의 공분을 얻는 것, 이것만이 이 회장이 국가권력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방법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최정학 씨는 방송대 법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2011.10.14 19:31ⓒ 2011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최정학 씨는 방송대 법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이국철 #측근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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