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창극단이 공연한 <심청전>의 한 장면. 심청이 인당수 빠지는 대목.
국립극장
우리나라에서는 1972년 도로교통법에 흰지팡이에 대한 규정이 처음 마련됐습니다. 현재 도로교통법 11조를 보면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도로를 보행할 때는 흰지팡이를 가지고 다녀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고, 같은 법 48조에는 "모든 차의 운전자는 어린이나 유아가 보호자 없이 걷고 있거나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흰색 지팡이를 가지고 걷고 있을 때에는 일시 정지하거나 서행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운전하시는 분들, 흰지팡이 보면 그 자리에 서거나 천천히 운전해주세요.
지금이야 흰지팡이가 재료도 좋고 가볍기도 하지만 아직도 나무를 깎아 만든 흰지팡이를 사용하는 곳도 있습니다. 우리 땅에 사는 시각장애인들은 스텐레스 재질이나 비행기 만드는데 쓰이는 듀랄루민 같은 가볍고 강한 재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보통은 텐트 폴대같이 안에 고무줄이 있어서 착착 접을 수 있는 것을 많이 사용하는데 몇 년 전에 한국시각장애인복지재단에서 안테나형으로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는 흰지팡이도 나와서 아주 편합니다.
어떤 것은 흰지팡이 안에 초음파 발신장치가 있어서 앞에 장애물이 있으면 진동으로 알려 주는 것도 있습니다. 세상 많이 좋아졌지요. 흰지팡이는 시각장애인이 걸음을 걸을 때 보조도구로만 사용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시각장애인이니까 조심해주세요"라거나 "나는 당신의 친절이 필요합니다"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기도 한 거죠. 일종의 시각장애인의 상징인거죠.
그래서 1980년 세계시각장애인연맹(WBU)은 10월 15일을 '흰지팡이의 날'로 정하고 "흰지팡이는 동정이나 무능의 상징이 아니라 자립과 성취의 상징이다. 전 세계의 시각장애인 기관과 정부는 이날을 기해 시각장애인의 사회 통합을 위한 행사와 일반인의 시각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한 계몽 활동을 적극 추진한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0월 15일을 전후해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한시련) 및 각 시각장애인 단체에서 흰지팡이의 날 행사를 벌이고 있지요. 올해 서울의 경우 10월 27일 '서울숲' 야외무대에서 펼쳐질 예정입니다. 그날 이 심봉사도 간만에 숲에서 좋은 공기도 쐬고 노래도 한 곡조 뽑으렵니다. 그러다 혹시 압니까? 1등이라도 해서 선물이라도 타게 되면 우리 청이에게 오랜만에 아빠 노릇 한번 하게 될는지….
막 잡아끌지 마세요... 시각장애인 안내는 이렇게사실 말이죠. 나같이 전혀 안 보여서 흰지팡이 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그래도 편한 편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이 시각장애인인 줄 알고 도와주는 일이 많거든요. 그런데 조금 보여서 흰지팡이 안 들고 다니는 사람이 길 물어보려고 하면 사람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째려보곤 하지요.
내 주위에 있는 다른 시각장애인들이 그런 하소연 많이들 합니다. 아예 안 보이는 사람만 시각장애인인 게 아니고 저시력인도 시각장애인이죠. 그러니 잔뜩 눈을 찌푸리고 있거나 행동이 이상하게 굼떠 보이는 사람이 길을 물어보면 이상한 사람 취급하지 말고 '저 사람도 시각장애인이구나' 하면서 친절히 대해주세요.
그런데 여러분, 시각장애인한테 길 안내해주는 건 좋은데 막 잡아끌지 좀 마세요. 어떤 사람은 내가 길 물어보면 다짜고짜 내 손목을 잡거나 흰지팡이를 잡고는 그대로 끌고 가곤 하는데, 이러면 우리 시각장애인들 엄청 스트레스 받습니다. 시각장애인을 안내할 때도 기술과 배려가 필요합니다. 먼저 당사자에게 도움이 필요한지 의사를 물어보세요. 시각장애인들은 익숙한 곳에서는 혼자서도 잘 가거든요. 괜히 그럴 때 도와준답시고 막 끌고가면 나중에 자기가 어디있는지 모르게 되고 그러면 아주 많이 당황하게 되거든요.
안내를 하려면 먼저 "어떤 방법으로 안내하면 편할까요?"라고 물어봐주세요. 당사자마다 안내를 받을 때 편한 방법이 모두 다르거든요. 보통은 안내하는 사람이 시각장애인 왼편에 서고 자신의 오른쪽 팔꿈치나 어깨를 시각장애인이 잡게 하는 것이 편합니다. 이렇게 하면 시각장애인은 안내를 받으면서 자신의 흰지팡이로 평소와 같이 길의 장애물 등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죠.
또 시각장애인을 만나면 제발 자기가 누군지 알려 주세요. 그냥 "안녕하세요?" 요렇게만 하면 아는 사람은 알 수 있지만 '이 사람 누구지?'라면서 헷갈릴 수 있어요. 그렇다고 누구냐고 물어보기도 뭣하고 말이죠. 또 식당 같은데 가서 아무런 정보 제공 없이 "뭐 먹을래?" 이렇게 물어오면 아주 난처합니다. 그 식당이 뭐하는 식당인지 알아야 주문을 하든지 말든지 하죠. 자기는 메뉴판 쳐다보니까 뭐가 있는지 알지만 시각장애인은 모르거든요.
또 메뉴를 읽어줄 때 제발 가격도 읽어주세요. 나같이 가난한 사람은 메뉴의 종류보다 가격에 더 관심이 많거든요. 이건 우리 청이도 잘 못 고치더라고요. 돈은 자기가 낸다고 아무거나 먹으라고 하지만 애비 입장에 그럴 수 있나요 딸이 살 때일수록 제일 싼 거 먹어야 하는데 가격을 모르니,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