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원전경복궁에 있다
이정근
대군청에 지휘본부를 설치한 수양이 참모들을 소집했다.
"전하는 내가 모시고 있다. 다음 계책을 말하라.""정난은 편안할 정(靖)자를 쓰고 어려울 난(難)자를 써서 정난(靖難)이라 부르고 나라의 위난을 평정했다는 뜻으로 배웠습니다. 아직 편안하지 않습니다."권람의 표정이 무거웠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혁명은 성공했을 때 혁명이지 실패하면 반역이 됩니다. 우리의 거사를 성공이라 부르기에는 아직 이릅니다."한명회가 긴장의 끈을 놓지 말자고 결의를 다졌다.
"북변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우리의 성공 여부가 달려있다.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수양이 핵심을 짚었다. 함길도에는 이징옥이 있다. 철령 이북과 차현 이남은 배역의 땅이라고 옛사람들이 그래왔다. 함길도가 그 중심에 있다. 함길도가 공연히 의심받는 것만도 아니다. 함경도 영흥 출신으로 동북면 지휘사가 된 이성계가 혁명의 꿈을 키웠던 곳이 함길도다. 그곳 진영을 찾아간 정도전이 '이만한 군대로 무엇을 못하겠습니까?'라고 부추겨 결국 혁명에 성공했다. '나는 했지만 너는 하지 말라'는 경구가 유효한 곳이다.
내가 하면 구국의 결단, 남이 하면 반란이징옥은 무예가 출중한 정통 무장으로 김종서 휘하에서 잔뼈가 굵었다. 육진 개척에 무공을 세워 김종서 후임으로 절제사에 올랐다. 그는 청렴하고 강직하여 백성들의 신망이 두텁다. 하지만 그는 병장기를 밀반출하여 안평에게 보냈다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최대의 관건이다.
"명만 내려주시면 이징옥의 목을 따오겠습니다."홍달손이 팔을 걷어 부치고 앞으로 나섰다.
"맞부딪치면 서로가 피를 보게 되고 그렇게 되면 백성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우리가 받습니다. 최선책은 아니라고 봅니다."권람이 제동을 걸었다.
"일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그 순서를 역으로 돌리면 번잡하고 공연한 원망을 듣게 됩니다. 우선 새로운 절제사를 임명하여 내려 보내고 이징옥을 불러올린 다음에 극변에 안치했다 목을 따면 됩니다.""역시 한방이다."수양이 탄성을 질렀다. 황보인, 이양, 조극관을 해치울 때는 전광석화처럼 격살하고 이징옥은 낚시로 천천히 끌어올리자는 것이다. 가히 완급의 귀재다.
"좋다. 한방의 안을 채택한다."웃음을 잃었던 수양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법도 절차도 없는 즉흥 임면과 살육... "불법도 성공하면 혁명"상호군 이효지, 선공감정 최중겸, 사선서령 홍연, 부지통례문사 송처검을 의금부 도사에 임명했다. 절차 없는 즉흥 제수다. 수양은 이들에게 지정을 영암에, 정분을 낙안에, 조수량을 고성에, 이석정을 영일에, 안완경을 양산에 안치하라 명했다. 모두 안평을 지지했던 사람들이다. 헌데 문제가 발생했다. 하삼도 도체찰사를 명받아 임지로 가고 있던 정분이 중도에서 정변 소식을 듣고 도망가 버리고 충청도 절제사를 제수 받아 부임준비를 하고 있던 지정이 자취를 감추어 버린 것이다.
도망자를 색출하라 명한 수양은 고삐를 더 죄었다. 요망한 왕실 점쟁이 지화를 베고, 안평과 김종서의 하인들마저 영구히 변방 관노에 붙이라 명했다. 가히 싹쓸이다. 대청소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살벌한 시기에 더욱 추위를 느끼는 사람이 있다. 이징석과 김문기다. 이징석은 이징옥의 형이고 김문기는 이징옥이 함길도 절제사일 때 관찰사였다. 이징옥은 자신의 예감이 적중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심정으로 목을 늘이고 있었다.
치면 당해야 하고 당하면 목이 저자거리에 걸려야 한다. 며칠 전, 명례궁을 찾아가 수양대군 눈도장을 받아둔 것이 절묘한 시간 포착이라고 스스로 자위했다. '나아갈 때와 들어갈 때는 아는 자는 군자이고 그렇지 못한 자는 소인.'이라고 성현이 중용에서 설파한 말씀을 잊어먹지 않고 실천한 자신이 군자(君子) 인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