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사려고 들었던 적금 통장
강정민
"우리가 집을 산 비법을 당신이 조카한테 좀 전수해줘." "비법은 무슨?" 조카의 결혼 소식을 남편에게 전했을 때, 남편이 내게 건넨 말이다. 우리가 집을 산 비법 분명히 있다. 하지만 조카에게도 그 비법이 쓸모가 있을까?
1995년에 결혼한 우리는 양가 부모님 도움 없이 전세금을 마련했다. 모아둔 돈과 대출금을 합쳐 만든 1400만 원으로 반지하방 하나, 주방이 있는 집을 구했다. 전세금 마련하느라 집안 살림살이도 꼭 필요한 것만 사고 나머지는 결혼 전에 둘이 쓰던 것을 가져왔다.
대문에서 세 계단 내려가는 반지하방은 거의 1층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문제는 비만 많이 오면 변기에 물이 차오르는 것이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변을 보고 물을 내리려면 물이 넘치면 어쩌나 조마조마했다. 그래서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그리고 별것도 아닌 일로 남편에게 짜증을 냈다. 그것이 싸움으로 이어진 날도 있다. 막연하지만 사람이 사랑하고 사는데 집도 중요한 변수란 생각이 들었다.
반지하방에서 벗어나려면 목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신혼 초에 3년 만기 적금을 들었다. 만기가 길어야 비과세혜택도 있고 이율도 높다. 우리에게는 좀 무리였지만 1년 동안 다달이 20만 원씩 꼬박 넣어 2백만 원을 넘게 모았다.
그런데 부모님이 갑자기 입원을 하셨다. 예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까 고민했지만 2년이나 남은 만기를 기다릴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적금을 해지했다. 그 뒤로도 비슷하게 적금을 해지한 일이 또 있었다. 적금을 만기까지 유지하는 방법이 없을까? 돈이 없는데 무리한 액수를 적금에 넣은 것도, 적금의 만기가 긴 것도 문제였다.
다시는 적금을 깨지 않을 방법을 생각해냈다. 3년 만기 적금 두 개를 6개월 시차를 두고 들었다. 그리고는 적금을 든 지 20개월간은 최소 불입액만 넣었다. 21개월부터 만기까지 16개월간은 돈을 싹싹 긁어서 적금에 넣었다. 그렇게 하나가 만기되면 필요한 돈은 쓰고 나머지 돈을 6개월 뒤에 만기될 통장에 넣었다. 그렇게 하니 실제로는 만기는 16개월짜리 적금인데 3년 만기와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남편의 1년 연봉, 한 달 만에 벌어들인 '아파트'적금이 최종 만기가 되었을 때 남편에게 집을 사자고 했다. 남편은 우리가 무슨 돈이 있어서 집을 사냐고 깜짝 놀랐다. 우리가 모은 돈으로는 집을 사기에 부족했다. 그래서 전세를 안고 사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그래도 모자라는 돈은 회사에서 대출을 받기로 했다.
주말이면 집을 보러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돈으로 살 수 있는 집이 별로 없었다. 우리가 살 수 있는 집은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중이 높은 아파트뿐이었다. 조건에 맞는 집을 겨우 구해 집주인에게 연락을 하면 집주인들은 집을 팔 생각이 없다고 했다.
간신히 2002년 초에 1600만 원의 계약금을 내고 매매계약서를 작성했다. 우리가 집을 산 게 당시 남편 회사 사람들에게는 의외의 뉴스였다. 동종업종에 비해서 회사 월급이 적어서 배우자의 안정적인 수입이 없이 집을 산 경우가 회사에선 드물었다. 부족한 돈 때문에 등기 이전도 내가 직접 했다.
매매계약서를 작성하고 곧 그 아파트를 전세로 내놓았다. 이틀 뒤 1300만 원을 받고 전세계약서를 작성했다. 며칠 뒤 그 아파트의 시세가 500만 원 올랐다. 집값 오르기 전에 계약 했다고 좋아했다. 그런데 며칠 뒤 또 500만 원, 또 1000만 원, 값이 계속 올랐다.
만일 집을 서둘러 계약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가진 돈으로 집을 사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 아찔했다. 그리고 걱정이 되었다. 집값이 오른 금액이 계약금보다 커서, 집주인이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렇게 되면 구매한 집에 새로 들어오는 세입자까지 입주를 할 수 없게 된다. 일이 여간 복잡해지는 게 아니었다.
부동산에 전화를 했다. 부동산에선 집주인이 계약을 해지하지 않기를 바라는 거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걱정하는 나를 위로하겠다고 부동산 사장님이 한마디 말을 건넸다.
"그래도 사모님은 좋으시겠어요. 계약하자마자 집값이 올라서." "조금 올랐을 때는 좋았는데 지금은 너무 오르니까 화가 나요. 이 아파트가 한 달 동안 번돈이 우리 남편이 일 년 동안 번 돈이랑 맞먹는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기가 막히네요." 새로운 세입자와 전세계약을 한 시점부터 중도금을 치르는 한 달간 우리가 그 집에 들인 돈은 3백만 원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 시기에 오른 집값은 2천만 원이 넘었다. 한 달간 700%의 경이적인 수익을 낸 것이다. 누가 년간 700%의 수익률을 내는 투자처가 있다고 하면 우리는 그 사람을 사기꾼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1년도 아닌 한 달 안에 나에게 벌어진 것이다.
사람의 노동보다 부동산이 더 큰 돈을 버는 사회가 무서웠다. 내 눈으로 직접 본, 돈이 돈을 버는 사회는 거짓말 같고 믿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집값이 턱없이 오르면 아직 집을 못 산 사람들은 어떻게 집을 사나? 생애 첫 집을 사는 데 몇 년의 시간이 더 필요하게 될까? 집 때문에 담보 잡혀야 하는 그 시간은 또 얼마나 아까운가?
만 원 한 장 아끼며 집 샀지만... 이제는 '비법'이 무색한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