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으로 이송된 일본 원전 복구 노동자지난 3월 24일(현지시각) 일본 후쿠시마현의 한 병원에서 방호복를 착용한 의료인력들이 엠뷸런스 주위에 모여있다. 이날 후쿠시마 원전에서는 복구작업원 2명이 물웅덩이에 다리를 담근 채 전력 케이블 설치 작업을 하다가 방사선에 노출돼 병원으로 이송됐다.
AP=연합뉴스/요미우리신문
"고마워요, MB" 같은 현수막 대신, 울진에는 1년에 한 두 차례, 원자력발전소 내부 점검 작업에 참가할 사람들을 모집하는 현수막이 거리 곳곳에 내걸린다. '오바올(Overall)' 혹은 '오바홀(Overhaul)'이라고 불리는 이 작업의 일당은 10만 원 내외로 아주 짭짤하다. 한철 잠깐 하는 일이다보니 직업소개소를 거쳐 온 일용직 노동자나, 수월하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지역의 젊은 남성들, 그러니까 내 친구나 아는 동생, 형들이 대부분이다. 일이 그렇게 고되지 않으면서 이토록 높은 급여를 주는 일용직 일자리가 대체 어떻게 해서 생긴 것일까?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방사성물질이 어마어마하게 누출되었지만, 그 수습 작업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수해나 화재는 일단 인력을 투입해서 신속하게 대처를 하면 그만이지만, 방사성물질은 물이나 불과 달리 흔적이나 형체도 없이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무서운 물질이다. 따라서 방사성물질 누출 뒤처리를 맡은 이들은 사실상 목숨을 걸고 일을 해야 한다. 사고 당시 피폭을 감수하고 진화와 보수작업에 뛰어든 '영웅들'에 대한 칭송이 전세계적으로 자자했던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피폭을 감수하고 진화에 나섰던 소방공무원들과 자진해서 수습작업에 참가한 이들의 용기와 희생정신은 갈채를 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그들이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치른 희생에 대한 보상 역시 올바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희생 뒤에는 슬픈 비밀이 숨어 있다. 복구작업에 참가한 이들 가운데에는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다른 선택지가 없는 일용직, 하층 노동자들이 많았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런 사람들이 후쿠시마에서 일하고 있다. (관련 기사 :
"이 돈 받고 들어가세요, 피폭될지도 모르지만") 누군가는 나서서 해야 할 가장 위험하고 해로운 일을 결국 사회적으로 가장 약한 이들이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와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울진에서도 원전 관련 작업을 하는 이들은 '약자'다. 소수의 정규직 관리자들이 다수의 일용직 노동자들, 그나마도 직업소개소를 통해 찾아온 하청노동자나 알바생을 작업에 동원하는 것만 보더라도 지금 일본의 상황과 닮았다.
작년이었는데, 점검 알바를 했다는 후배가 있어서 "너 피폭될 수도 있다는 걸 몰랐냐"하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피, 뭐? 그게 뭔데?"였다.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그 친구는 자신이 방사성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 위험한 작업에 동원되었다는 사실조차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정을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돈이 궁한 대학생으로서는 일당이 세니까 일단 하고 보자는 식이고, 원전본부를 비롯한 직업소개소는 그런 위험성에 대해 굳이 물어보지 않으면 대답해 주지 않는 것 같았다. 지금도 때만 되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인부 모집 현수막이 걸리고, 알음알음으로 찾아온 청년, 일용직 노동자들이 원전으로 몰려든다.
헌법 1조를 바꾸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차별적' 민주공화국원자력발전소의 입지 선정도 사실 이런 정보의 비대칭과 경제적 어려움을 이용한 '꼼수'가 아닐까 싶다. 원자력발전소가 아무리 안전하다고 떠들어대도, 사람들은 그것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 같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인구가 적은 울진이나 영광 같이, 기껏해야 관광명소 혹은 대게, 굴비 같은 특산품으로 알려진 전형적인 지방 소도시에 원자력발전소가 자꾸만 들어서는 것이다.
내 고향 울진의 인구는 5만이 조금 넘는다. 그마저도 계속 줄고 있고 읍내에서 조금만 나가면 할매, 할배들이 지키고 선 집들이 수두룩 빽빽하다. 우리 사회 전체에서 볼 때 경제 면에서나 정보 면에서나 약자일 수밖에 없는 노령 인구와 농민·어민들이 다수를 이루는 울진에서 원전에 대해 제대로 학습할 수 있는 기회는 제한적이다.
지역 행정가들과 정치일꾼들은 열악한 재정 때문에 세금 혜택과 막대한 지원금이 주어지는 '원자력발전소 유치'라는 달콤한 유혹을 끊을 수가 없다. 무소속 돌풍을 일으키며 한나라당 표밭이나 다름없는 울진에서 득표수 1위로 군의원에 당선된 장시원씨가 지난 2월 있었던 군의회의 원전유치동의안에 대해 유일하게 반대하고 나섰지만 6대 1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유치동의안이 가결되었다. 동의안 가결 1개월 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났다.
후쿠시마 사고로 원자력발전소 자체가 '만의 하나' 일어날 수 있는 위험에 그토록 취약한 폭탄과도 같다는 것을 바로 옆에서 확인하고도, 또 가능한 한 원자력발전 시설을 축소시키는 선진국들의 탈원전 흐름에 역행해가면서까지 추가 건설 계획을 입안하는 이 정부의 행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것에 대해 함구하는 언론과 과학자들까지 생각하면 국민이 주인인 민주공화국임에도 그 주인들이 지방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원전의 유지와 보수 작업에도 경제적으로 위기에 몰린 일용직 노동자들이나 물정에 어두운 지역민들을 데려다 쓰는 행태도 진정한 민주주의와는 분명히 거리가 멀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로 시작하는 헌법 1조는 정확하지 않다. 이 조항을 '대한민국은 개인의 능력과 상황에 따라 대우하는 차별적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원전을 둘러싼 현실이 그러할진대, 그에 맞게 실정법을 고쳐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한강에 원자력발전소를 짓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