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교과서들 (자료사진)
서부원
중학교 <역사> 교과서로 가면 더욱 가관이다. 이들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는 헌법 전문 조항도 교과서에서 삭제하자고 주장한다. 대신 '유엔의 도움으로 건국하고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했다'는 내용을 넣자는 것이다. 지난 '건국절' 소동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문제는 대체하려는 서술의 내용이다. 해방이 유엔, 곧, 미국의 도움을 받았다고 기록되는 순간, 그들에게 분단의 책임을 전혀 물을 수 없게 된다. 그런 논리라면, 일제의 무장 해제를 위해 38도선 북쪽을 점령한 '해방군' 소련에게도 돌을 던질 수 없다. 더욱이 해방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투쟁은 순간 존재감을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
또, 식민지의 질곡에서 해방됐다는 역사적 사실은 슬그머니 숨긴 채,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국가를 세웠다고 강조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반제국주의 항일독립운동을 미소 냉전을 빌미로 희석시켜 엉뚱하게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대립인 양 단순화시키려는 짓이다. 해방을 위한 공산주의 세력의 엄연한 역할과 몫을 부정하고, 자유민주주의 세력이 항일독립운동의 주류인 양 진실이 왜곡될 소지가 크다.
이는 역사를 진실의 눈이 아닌,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입맛대로 짜깁기하고 재해석하려는 '정치 행위'다. 동족상잔의 참혹한 비극이었던 6·25 전쟁이 죗값을 기다리던 친일파들에게는 목숨을 건지고 복권된, 나아가 그들을 매국노에서 애국자로 둔갑시킨 하늘이 준 '기회'였음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이러한 진실엔 눈 감고 오로지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한 전쟁이었다는 외눈박이 사실만 미래세대 아이들의 머릿속에 주입하려 들고 있다.
당연히 학계의 반발은 거세다. 따지고 보면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장들이지만, 어떤 힘을 등에 업고 만만치 않은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일제강점기 경제성장을 미화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수용 불가 방침을 정했지만,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대체하고 유엔의 도움을 받아 건국했다는 등의 내용은 집필기준에서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이 이를 증명한다.
9월 28일 수요일, 학계와 시민단체의 엄청난 반발을 무릅쓰고 '이승만 다큐멘터리' 방송이 결국 강행되는 것도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영방송이 그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가 됐다.
식민지를 근대화 과정의 경제성장기로 해석하고, '국부' 이승만과 '경제발전의 지도자' 박정희를 추앙하는 이른바 '건국 세력'의 역사인식은 '경제 대통령'을 부르짖는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고스란히 계승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초 학문의 울타리를 효율의 이름으로 허물더니, 역사마저 경제의 시녀로 전락시켜 버렸다.
단언컨대, 그들의 주장이 결코 교과서에 단 한 줄도 반영되어서는 안 된다. 이미 오래 전에 박물관 수장고에 들어갔어야 할, 이른바 '식민사관'과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주장을 비판하는 이들을 향해 그들은 전가의 보도처럼 '좌파'니 '종북 세력'이라고 몰아세우며, 그러려거든 차라리 북한에 가라고 조롱한다. 그러나 그 조롱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을 정작 그들은 모른다. 일제의 식민 통치를 긍정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그들이 갈 곳은 일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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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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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도움으로 건국? 그럼 김구 선생은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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