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NHS(National Health Service)는 국가가 조세로 부담하고 관리하는 의료 서비스다. 아프면 누구나 담당 GP(General Practitioner, 일반의)의 처방을 받아 2,3차 진료기관에서 치료받을 수 있다.
남소연
그렇다고 영국 NHS가 국민들을 마냥 '방치'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꼭 필요한 사람은 비용 걱정 없이 신속하게 병원 서비스를 받게 함은 물론, 평상시의 건강관리도 세심하게 신경쓰고 있었다.
조세로 NHS 예산을 조달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국민들이 병에 덜 걸리도록 장려해 국민건강증진과 더불어 의료비 지출을 최소화하는 게 효과적이다. 때문에 영국도 비용이 많이 드는 사후적인 질병치료보다는, 비용대비 효과가 큰 예방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었다.
국민 모두에게 배정된 GP는 일상적인 건강관리를 책임지는 첨병이다. GP 세리언 초이(Cerian Choi)씨는 자신을 '친구 같은 의사'로 표현하며 "일상적·지속적 환자 관리가 최대 장점"이라고 말했다. 에바-마리아 헴프(Eva-Maria Hempe, 케임브리지대 박사과정)씨는 "영국에선 1차 진료를 확충하기 위해 GP 양성에 힘을 쏟는다"며 "GP 급여 수준이 전문의에 비해서도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국민에게 꼭 필요한 건강검진의 경우, 정부가 꼼꼼히 챙기고 있었다. 박현미씨는 "여성의 경우, 2년에 1번씩 자궁경부암 검사를 하라고 NHS에서 연락이 온다"며 "1번 통보하고 마는 게 아니라 몇 번씩 귀찮게 연락이 와 결국엔 받게 만든다"고 말했다. 고혈압 치료를 하고 있는 영국 생활 5년차 김의식씨는 "정기적인 혈압검사는 물론, GP가 당뇨검사 등도 먼저 받으러 오라고 해서 받았다"며 "한국에 있었으면 신경도 안 썼을 텐데 영국에선 합병증 예방 차원에서 관리해 주는 것 같더라"고 전했다.
정부는 GP에게 지역 주민들의 건강 상태가 좋아질수록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유인책을 쓰기도 한다. 주민들이 담배를 끊거나 살을 빼거나 혈압/콜레스테롤 수치 등을 낮추면 추가수당을 받는 식이다. 지난 7월 영국을 방문한 김창보 시민건강증진연구소장은 "평소에도 '술·담배 끊어라, 식습관 조절해라'는 GP의 잔소리가 나오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일까. 느려 터졌다고 조롱받는 영국의 평균수명은 한국에 비해 약간 길다. UN이 발표한 국가별 평균수명(2005~2010)에 따르면 영국은 79.0세, 한국은 78.2세였다. CIA(미국중앙정보국)이 발표한 월드 팩트북2011(World Factbook 2011)에서도 영국은 80.05세, 한국은 79.05세를 기록했다.
[바뀐 생각 ②] '국가계획' 의료, 효율적인 것도 많네'국가의료'와 '국가계획'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한국에서는 국가가 주도한다고 하면 비효율적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그러나 NHS를 유심히 살펴보니, 예상과 달리 효율적인 면이 상당히 많았다. 그 핵심은 의외(?)로 시장에 맡겨지지 않은 국가계획 중심의 의료제도 설계에 있었다. 대략 3가지 정도가 인상에 남는다.
우선, 영국에서는 한국 같은 '수도권 유명대형병원 쏠림현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우수 의료진과 환자들이 죄다 서울로 쏠리는 현상은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매우 낭비다. 가벼운 병이든 중한 병이든 대형병원으로 몰리는 현상도 환자 개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권'이 비합리적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영국의 경우는 국가의 전체적인 계획과 가이드라인을 기초로 GP와 병원이 배치된다. 오지로 갈수록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한계가 없진 않았으나, 한국에 비하면 지역격차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덜했다. 또한 정부에서 '오지 근무 GP에 인센티브', '이동진료소 확충' 등의 정책 마련을 통해 지역격차를 해소하려는 노력도 하고 있었다.
특정 질병/대상(당뇨, 소아, 신경정신질환, 암 등)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특성화 병원 또한 지역별 인구수에 비례해 배치한다. 우이혁 전문의는 "영국은 어디에 살든 동일한 수준의 서비스를 받도록 하는 게 국가의 역할이라는 인식이 강하다"고 말했다. 또한 영국에선 GP가 '문지기'로서 꼭 필요한 환자만 (2차) 병원에 의뢰하기 때문에, 경하든 중하든 무조건 큰 병원을 찾는 현상은 구조적으로 발생할 수가 없었다.
둘째, 국가가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의료시스템이기에, 환자의 과거병력/가족력/신체정보 등의 기록공유를 통해 체계적인 건강관리가 가능했다. 한국에서는 병원을 옮길 때마다 증상이나 과거병력 등을 다시 설명하고 기록하는 게 일반적이다. 각종 검진 또한 병원별로 제각각 실시해 중복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반면 영국에서는 1-2차 의료기관 간 기록공유는 물론 협진 계획까지 함께 구성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김의식씨는 "GP에게 초진을 받을 때 각종 정보를 세세히 다 물어서 기록해 두더라"며 "나중에 다른 의사나 전문의를 만날 때도 공유가 돼 일괄적인 관리를 해줘서 편리했다"고 말했다. 영국생활 29년차 한현수씨도 "(2차) 병원에서 치료받은 기록도 다시 GP에게 넘어와, 환자가 무슨 병원에서 어떤 처치를 받았는지 한눈에 관리가 되더라"고 말했다. 물론, 기록공유는 환자의 동의가 반드시 전제된다.
통합적 환자관리, 소외되지 않는 응급·외상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