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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도 돈이지만...원하는 사람에게 주니 기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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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지 나눔장터 ⓒ 이진선
어제(24일)는 '놀토'(학교의 노는 토요일)였다. 우리집 근처에선 매월 2, 4째 놀토에 '나눔장터'가 열린다.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한 번도 못 가봤는데, 어제는 장터에서 '장사' 좀 해볼까 하는 생각에 팔 물건을 챙겨들고 장터에 가 자리를 잡았다.
나랑 내 동생이 챙겨온 물건은 이제는 쓰지 않는 책, 옷, 장난감 등이었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나눔장터에서 한 번 팔아 본 적이 있어 파는 게 그렇게 낯설지는 않았다.
"장난감, 책, 옷, 싸게 팝니다!"
나는 소리치면서 동생에게도 하라고 했다. 4학년인 내 남동생은 쑥스러운지 머뭇거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리 물건을 구경한다. 우리는 책 한 권에 100원, 옷은 500원, 장난감도 웬만한 건 100~500원, 살 때 비싸게 산 건 2000~5000원에 팔았다.
우리 '상품'을 본 사람들은 대부분 100원이란 말에 "이러면 사 가는 내가 미안한데..."라며 웃었다. 가격이 싸서인지 우리 물건은 금방 동이 났다.
대부분 다 팔리고 이제 자리를 정리하려 할 때쯤 어린 남매가 와 앉더니 남은 장난감을 물끄러미 본다. 남동생은 오토바이 장난감이 가지고 싶은가 보다. 누나는 계속 가자고만 한다. 이왕이면 들고 갈 물건을 줄이고 싶었던 나는 그냥 가져가라고 했다.
그 아이는 깜짝 놀라 "그래도 되느냐"고 물었다. 눈은 휘둥그레졌지만 기뻐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아이의 누나는 당황해 했다. 그냥 "여기서 가지고 싶은 것은 다 들고 가도 된다"고 말했다. 곧이어 그 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오토바이와 인형을 집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걸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팔 때도 좋았지만, 특히 이 남매에게 장난감과 인형을 줄 때 참 기분좋게 물건을 보냈다. 이번 장에서 우리는 매우 싼 값에 팔았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이 기분좋게 우리 물건을 사갔다.
<센과 치히로...>의 '강의 신'이 웃은 까닭, 이제 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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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센은 오물신을 씻겨 내면서 오물신 몸에 박혀 있는 오물의 파편을 발견하고
이를 빼낸다. 그러자 엄청난 오물이 쏟아진다.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집에 와 보니 여기저기에 공간이 생겼다. 다 책, 옷, 장난감이 있던 곳이다. 쓰지도 않으면서 갖고 있던 게 얼마나 많았는지….
문득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다들 '오물의 신'(실은 '강의 신'이다)이라 부르며 피하는 괴물(?)이 센이 일하는 목욕탕에 온다. 센은 이 괴물을 씻기다 몸에 박혀 있는 막대기를 잡아당기는데 그 순간 오물의 신 몸에 있던 온갖 잡동사니가 다 쏟아진다. 그 신은 몸이 가벼워지자 아주 편안하게 웃고는 날아가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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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물을 쏟아내고 나서 편안하게 웃는 '강의 신'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내가 판 것들이 '오물'이라는 뜻은 아니다. 난 그냥 내겐 불필요한 것을 누군가에게 줘서(적은 돈이나마 받았지만) '강의 신'처럼 홀가분했을 뿐이다. 이번 장터에서 정말 기분 좋은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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