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안 풍경 전집> 표지
눈빛
내게 고향 하면 떠오르는 풍경에 넓은 들이나 실개천, 얼룩배기 황소가 출현하진 않지만 나름대로 향수 어린 정경들이 있다. 굳이 명명하자면 '고향의 골목' 정도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 도시 속에서 아직도 존재하는 골목길을 만나면 고향에 온 것 같은 아련함과 그리움에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골목을 이리저리 배회하곤 한다. 내가 자란 어린 시절의 놀이터요, 다 자라 어른이 되어서도 마음속으로 찾아 헤매던 고향의 골목을 추억하면서···.
사실 당시 내가 살던 서울 변두리나 외곽의 풍경은 슬레이트와 시멘트 블록과 널빤지 등이 주요 배경으로 그 삭막함과 비인간적인 느낌은 지금의 획일적인 아파트와도 만만치 않다. 그런 삭막함이 정감적이고 소박하고 따스하게 기억되는 건 아마도 '골목'의 힘이 아닌가 싶다. 주거공간의 일부이고 이웃간 만남의 장소이며 사랑방이자 놀이터이기도 한 공간, 골목이 있어 궁핍스럽고 척박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어느 때는 미소를 머금게 한다.
이런 골목안 풍경들을 서른살때부터 삼십년이 넘게 줄곧 사진으로 찍어온 이가 이 책 <골목안 풍경 전집>의 저자 김기찬이다. 지난 2005년 향년 68세로 별세한 저자가 남긴 6권의 '골목안 풍경' 사진집과 미공개 유작 34점을 한데 모아 만든 책으로 모두 500여 점의 사진이 수록된 그의 전집이기도 하다. 가난과 행복은 어울리지 않는 이 시대에 가난했지만 행복했다고 좋은 시절이었다고 느껴지는 사진들이 차곡차곡 포개져있다. 몸만 시간에 쫓겨 바쁘게 허덕일 뿐, 마음은 오히려 공허해지고 있는 나같은 사람들에겐 치유와 같은 사진집이다.
그는 골목안에서 자신의 고향을 보았고, 가난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인간의 따뜻한 본성을 느꼈다고 한다. 골목안 주민들과의 오랜 유대감을 바탕으로 진행된 그의 골목안 작업은 그가 타계하기 직전까지 계속되었다. 그의 사진에 나타난 골목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거실이며 놀이터이자 공부방이었고, 동네 사람들 간의 소통과 생활의 현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