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숙 통장 한사코 사진 찍기를 거부하며 자신을 낮춘 이정숙 통장. 오랜 설득 끝에 그녀의 선한 얼굴을 담을 수 있었다
박영미
어르신들이 쉴 새 없이 부르는 사람. '우리 통장님, 우리 통장님'. 바로 이정숙씨를 두고 하는 말이다. 화장기 없이 수수하고 선하게 생기신 이 통장. 그녀가 자신의 집 화단을 없애고 어르신 쉼터를 만든 지도 10여년이 넘었다. 감나무, 꽃나무 등 아름다운 화단 대신, 더 아름다운 어르신 쉼터를 만들기까지의 굴곡 많은 그녀의 인생이야기를 들어봤다.
"IMF 외환위기 때 사업실패로 절망의 늪에 빠졌어요. 그런데 참 다행스런 일은 인생의 진정한 가치는 돈이 아니라 이웃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돈이라는 게 항상 내 주머니에 있는 게 아니잖아요. 가난해졌지만 지금이 더 행복해요."이정숙씨 가족에 먹구름이 드리워진 것은 IMF 외환위기 때. 건설경기 위축으로 20년 가까이 운영하던 공장(전기업)이 심각한 경영난으로 문을 닫게 됐다. 회사가 부도 처리되면서 빚더미에 올라앉았고, 3명의 자녀와 함께 했던 평온한 일상은 한순간에 뒤죽박죽됐다. 하루아침에 공장사모님에서 빚쟁이가 된 정숙씨는 하루하루 고통 속에서 눈물로 지새우다 어느 날 이렇게 주저앉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낮은 곳에서 다시 시작하자고 마음먹고 가장 먼저 봉사활동을 했다.
정숙씨는 평소에 다니던 사찰을 무작정 찾아가 청소와 심부름 등으로 자신의 고통을 극복해갔다. 특별한 기술이 없었던 그녀는 2000년도부터 군산역 인근 무료급식소에서 설거지를 했고, 생계유지를 위해 식당 일과 배달, 운전 등도 병행했다.
봉사를 계속하면서 공부와 기술의 중요성을 느낀 그녀는 2002년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미용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본격적으로 인생의 활력을 느끼게 된 그 무렵, 통장 직을 맡게 됐고 허드렛일 하면서 모은 돈으로 지금의 쉼터를 조성하게 됐다. 어르신들과 생활하며 사회복지의 더 큰 뜻을 품게 된 정숙씨는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취득하고, 지금은 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전공 3학년에 재학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