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천 옆으로 피어난 해바라기길 사이로 할머니가 무거운 폐지더미와 씨름하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이정민
'폐지 줍기' 현장에도 부익부빈익빈이...폐지 줍는 노인들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조씨 할머니처럼 정말 절박한 상황에 내몰린 '생계형'과 딱히 생계에는 지장이 없지만 줍기만 하면 바로 돈이 되는, 널려 있는 쓰레기들을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근검절약형'들이다. 이 근검절약형들이 생계형에 비하면 풍채도 좋고 건강상태도 양호하기 때문에 순발력이 뛰어나다. 그러니 못 먹어 비실거리는 생계형 노인들은 여기서마저도 번번이 밀린다.
근검절약형 노인들에게는 폐지 줍는 사람이라면 꼭 갖추어야 할 도구인 수레를 구비하지 않는다는 결정적 특징이 있다. 일말의 체면을 생각해서 차마 수레까지 밀고 나설 수는 없는 것이다. 행여 아는 사람에게 현장을 들키지 않기 위해 신속해야 하고, 능청스러워야 한다.
생계형에 비하면 작업에 따르는 불편함이 훨씬 다양하지만 그렇다고 작업에 임하는 그들의 열정이 결코 뒤지진 않는다. 박스를 옆구리에 낀 채 시치미 떼고 걷는 모습은 영락없이 집에 급히 박스 하나가 필요해서 구해가는 듯한 표정이다. 눈으로는 끊임없이 더 주워갈 물건은 없는지 두리번거리는 걸 게을리 하지 않는다.
폐지 줍는 현장에서조차 부익부빈익빈의 악순환이 두드러진다. 이 구조적 모순에서 밀려난 가엾은 조씨 할머니의 존립 위기를 염려한 주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이 급기야 '쓰레기 투기 금지'라는 초유의 상황으로 발전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순순히 쓰레기를 내놓지 않게 되었다. 나는 이 골목 사람들을 거의 모른다. 그런데 사람 마음은 다 같은 모양이다.
생계형이든 근검절약형이든, 대부분 폐지 줍는 노인분들의 처지는 딱하다. 추운 겨울날이나 한 여름 땡볕에 거동조차 불편한 노인들이 딱딱한 박스를 힘겹게 밟아 펴고 수레에 싣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내가 그들과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는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조차 미안하고 죄스럽다.
조씨 할머니가 우리 동네를 떠나지 못하는 사연조씨 할머니가 이 골목을 떠나지 못하는 데는 슬픈 사연이 있다. 어린 자식들을 남기고 젊은 나이에 덜커덕 세상을 떠나버린 아들이 평소 이 부근에서 근무를 했던 인연 때문이다.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아들이 다녔던 관공서 부근을 할머니는 차마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집이 먼 데도 굳이 이 골목을 터전으로 생활하는 할머니의 남다른 아픔이다.
"새벽부터 나와서 이제까지 딱 삼천 원 벌었네. 경기가 안 좋아서 그런가 박스들도 통 안 나와."그냥 서 있기도 힘든 여름 땡볕 아래서 조씨 할머니는 그날 하루 벌이가 신통치 않다며 한숨을 쉬셨다.
"할머니 더우니까 이거 한잔 드세요. 이거 음료수 사놓은 지가 오래 돼서 빨리 먹어치워야 하거든요."조씨 할머니에겐 목마를 때 음료수 한 잔, 물 한 모금 얻어마시는 데도 철칙이 있다. 음료수는 절대 안 되고 물은 된다. 음료수는 사람들이 돈을 주고 사는 것이라 폐를 끼치니 안 되고 그냥 맹물만 달라신다. 그냥 음료수를 드리면 이미 따라 놓은 컵이라도 절대 마시지 않는다. 그러면 다음에 또 음료수를 주게 될 것이니 기어이 물을 달라신다. 그러니 할머니에게 시원한 음료수 한 잔 대접하는 데도 요령이 필요하다.
내가 시댁이랑 친정에서 되는 대로 묵은 밑반찬을 퍼나르는 것은 사실 조씨 할머니를 의식해서이다. 처치곤란이다, 못 먹는 음식인데 시어머니가 줘서 하는 수 없이 가져왔다 엄살을 부리면 할머니는 그런 음식들은 고맙게 가져가신다. 그렇지만 내가 일부러 돈을 주고 사드리는 과일이나 식품은 절대 받지 않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