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당뇨인데 초콜릿을?...그래도 즐거웠다

3일간 응급실에서 엄마와 한 데이트

등록 2011.09.15 09:16수정 2011.09.15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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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전화기를 놓고 자리를 비운 사이 엄마로부터 전화가 와 있었다. 뭔 일인가하고 전화를 걸었더니 숨찬 목소리로 원주 큰 병원에 가셔야 한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당뇨를 앓고 계셔 정기적으로 다니는 병원이 있는데 보통사람보다는 훨씬 높은 당 수치를 보이자 의사가 두 손을 들고 소견서를 써줄테니 큰 종합병원에 가보라고 한 것이었다. 주말이 걸려 월요일 오전 9시가 되기 바쁘게 예약을 했더니 병원에서는 화요일에 오라고 했다.

 

6일 화요일 야근을 마치고 예약시간을 맞추기 위해 서둘러 시골로 갔다. 엄마는 그때까지도 텃밭에서 갓 씨앗을 뿌리고 계셨다. 당뇨수치가 정상인의 서너배에 달할 정도로 높은데 이렇게 태평할 때가 있는가. 그러고보면 사실 엄마의 가장 큰 병은 당뇨가 아니라 일을 먼저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당뇨는 힘든 일 하지않고, 건강식으로 조절하면 큰 위험이 없기 때문에 부자병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엄마는 칠십 중반에 접어든 나이에도 이웃집에서 일을 해달라고 하면 수다 떨고, 같이 식사하는 재미에 돈까지 벌 수 있으니 자꾸만 일을 가셨고 이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렇게 힘든 일을 하시고 오니 밥을 더 많이 먹게 되고, 당 수치가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고, 다시 며칠 있다 병원에 가서 약을 받아오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렇게 다니던 병원에서도 당 수치가 위험경계를 넘게 되니 의사도 두려웠나 보다. 소견서를 써주면서 꼭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한 것을 보니. 

 

당뇨병으로 응급실에 입원한 엄마... "추석은 어떡하구"

 

 동생집에 가서 손자와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아직도 정정하시지만 당뇨로 좀 고생을 하시는데 이제는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매일 전화해서 원격으로 제가 당체크를 하고 있습니다.

동생집에 가서 손자와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아직도 정정하시지만 당뇨로 좀 고생을 하시는데 이제는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매일 전화해서 원격으로 제가 당체크를 하고 있습니다. ⓒ 김영래

동생집에 가서 손자와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아직도 정정하시지만 당뇨로 좀 고생을 하시는데 이제는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매일 전화해서 원격으로 제가 당체크를 하고 있습니다. ⓒ 김영래

시원하게 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한 병원은 언제나처럼 가득찬 주차장과 어깨를 부딪칠 만큼 북적대는 병원입구로 사람을 주눅들게 만들었다. 잠시 후 우리도 그 속에 빠져들어 같이 웅성대는 풍경속에 갇혔다.

 

예약접수를 한 곳에서 기다려 의사를 만나기는 했는데 참으로 싱겁기 그지없었다. 애타게 뭔가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여겼던 기대가 허무하게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쉰 중반의 의사는 환자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않고 컴퓨터를 유심히 보다가 말했다.

 

"안 되겠네요, 입원하세요."

 

이 황당한 한 마디에 엄마는 뭔가를 잡으려는 듯 매달려 본다.

 

"뭐가 잘못됐나요. 지금 입원은 못 하고, 입원을 하더라도 추석을 지내고 해야지 뭐…"

 

이때 내가 끼어들었다.

 

"그냥 입원하자."

"지금 입원하면 추석은 어떡하고. 그냥 처방을 내서 약을 주면 안되나요?"

 

의사는 단호했다. "처방은 안되고, 입원할 건지 안 할 건지만 결정하세요. 지금 전산이 고장나서 시간이 없으니…" 하면서 우리를 내쫓다시피 했다. 이미 다음 차례 환자가 들어오고 우리는 엉겁결에 일어섰다. 이런 황당할 때가 있는가. 뭔가 새로운 처방을 받고 병에 차도가 있을까 하는 아련한 기대는 이미 물거품이 됐고, 이제는 아주 어렵고 당황스런 결정을 해야하는 갈등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대기 의자에 잠시 앉았다가 슬며시 간호사에게 다가가서 현재의 상황을 물으니 입원을 하실 건지 아직 결정은 안 했느냐고 물었다. 누구도 우리의 상황을 자세히 들어주는 이 없이 재빨리 입원 결정을 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입원하면 얼마나 해야 하나요?"

 

한 일주일 정도 입원을 해야 하는데 지금 입원실이 없어서 응급실에 입원해서 기다리다가 병실이 나면 그때 들어가야 한다는 더 갑갑한 대답이 돌아왔다. 엄마와 나는 수렁에 발이 빠지는 상황을 느꼈지만 꼼짝도 할 수 없이 그저 지켜보는 사람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 때 필요한 건 결단력이었다. 이미 수렁에 들어온 이상 옷에 흙이 묻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빨리 순응해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럽시다. 응급실에라도 입원할게요."

 

그렇게 시작된 응급실에서의 진료는 3일 동안 계속되었다. 당 수치가 좀 높은 상태이긴 했지만 온갖 험한 환자들이 계속 들어오고 나가는 응급실에서의 진료는 엄마에게도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물론 나도 어디 엉덩이 붙이고 쉴 곳이 없어 늦은 밤에는 차에 들어가 시트를 눕히고 모기와 전투를 하면서 비몽사몽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 가운데 엄마가 혹시 이러다 없던 병도 생기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슬며시 들었다.

 

데이트도 하고 군것질도 하며, 엄마와 함께한 오붓한 시간

 

이렇게 안타까운 시간속에서도 엄마와 오붓한 시간이 있었다. 응급실은 식사가 제공되지 않아 꼭 링거줄을 달고 지하에 있는 식당까지 가야했다. 이 시간이 엄마와 데이트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처음에는 잘 몰라 된장찌개 등 외부인처럼 특별 메뉴를 사서 먹었지만 돌아보니 병원직원들이 많이 먹는 백반메뉴에 엄마가 좋아하는 김칫국, 아욱국 그리고 집 반찬 같은 것들이 맛갈나게 나와서 줄곧 그 메뉴만을 먹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도 혈당체크가 계속되다 보니 엄마의 식사가 걱정돼 최소한으로 줄이려고 해보았지만 식성이 좋은 엄마에게는 늘 못마땅했고, 엄마는 밥으로 채우지 못하는 공복감을 김칫국, 된장국으로 맛갈나게 메우셨다.

 

그리고 이틀째 되던 날, 인슐린 주사 덕분인지 최근 들어 보지 못한 지극히 정상적인 100대의 당수치가 나왔지만 엄마는 오히려 저혈당 쇼크 증상을 보였다. 식사를 가지러 간 사이 엄마는 그 짧은 시간동안 식은땀을 흘리고 정신이 혼미해질 만큼 어지러워 하시는 것이었다. 여전히 국을 두 그릇이나 비웠지만 엄마는 뭔가 허전해 했다.

 

나는 엄마에게 커피 한잔 하자며 마트로 가서 초콜릿 과자와 커피를 두 잔 놓고 잔잔하게 군것질을 했다. 그 순간엔 엄마가 아프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오붓하고 다정한 모자가 되어 짧은 시간의 행복을 느꼈다.

 

의사가 군것질도 하지 말고, 밥도 많이 먹지 말라고 했지만 갑작스런 혈당치의 하락을 엄마의 몸이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아 내가 엄마를 진단하고(?)처방했던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병실로 돌아 왔고 잠시 후 체크한 혈당치가 200을 갓 넘는 평범한 수치가 나왔다.

 

"거봐." 간호사 뒤에서 엄마와 나는 의미있게 웃음을 주고 받았다. 밤 늦게 차에 돌아와 잠을 청하고 누웠는데 모기가 윙윙 거리며 잠이 오지 않았다. 점심 때 엄마와 한 데이트가 자꾸 가슴 뿌듯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아득한 흑백사진 같은 옛 일이 하나 둘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어린시절 엄마 애타게 했던 시간 보답할게요... 함께 이겨내요"

 

 제가 초등학교 때 엄마와 누나, 동생이 소풍가서 찍은사진 입니다. 엄마 시장 다닐 때 쫓아 다니던 그 시절의 사진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 엄마와 누나, 동생이 소풍가서 찍은사진 입니다. 엄마 시장 다닐 때 쫓아 다니던 그 시절의 사진입니다. ⓒ 김영래

제가 초등학교 때 엄마와 누나, 동생이 소풍가서 찍은사진 입니다. 엄마 시장 다닐 때 쫓아 다니던 그 시절의 사진입니다. ⓒ 김영래

엄마가 장에 가는 날 나는 -엄마 표현에 의하면 찐 조구(조기)대가리처럼- 끈질기게 따라가려고 갖은 수를 썼다. 그리고 결국 엄마에게 항복을 받고 같이 버스를 탔다. 

 

시장입구에서 농부를 기다리는 상인들에게 이고간 들깨, 참깨, 콩 등을 팔아 현금을 쥐면 나는 벌써 서점 앞에 가서 <어깨동무> 책을 만지작거리고 있었으며, 엄마는 어이없어 하면서도 그걸 사주곤 하셨다.

 

그게 나에게는 큰 자랑이고 힘이 되었다. 또 어떤 때는 스케이트를 사달라고 졸라서 동네 연못에서 남들이 신발로 미끄러지며 뛸 때 난 반짝반짝하는 스케이트로 앞질러 달리곤 했다.

 

추억으로 얘기를 했지만 당시에 엄마는 참 많이 약이 올랐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랬던 엄마가 어느덧 늙고 병이 들었다. 보살펴 드리고 모셔야 하는 당연한 소임임에도 그러지 못하는 시간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지금 비록 병이 들었지만 이렇게라도 곁에서 엄마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어린시절 내가 애타고 안타깝게 했던 엄마의 시간에 대한 보답인 것 같아 스스로 대견하고 너무 행복했다.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까지 생겼다.

 

3일째 되던 날 우리는 병실에 입원을 했고, 그동안 고생했던 것에 대한 보답이랄까 창가 넓고, 깨끗한 자리가 배정되었다. 당뇨센터에서 식사요법과 인슐린 주사 사용법 등 기존에 처방받지 못한 각종 새로운 시스템을 경험했다. 좀 비싼 진료의 새로운 경험이었지만 엄마와 함께한 시간이 아이러니하게도 행복했다. 지금은 집으로 돌아와 그동안 배웠던 각종 치료요법을 냉장고며 여기저기에 크게 써붙여 놓았다.

 

정상적인 혈당치가 되니 엄마의 얼굴색이 좋아졌다. 더불어 앞으로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어왔다. 이제 엄마 혼자서 지고가는 병이 아니라 가족이 같이 하고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당뇨와 군것질, 시간의 안타까움 속에서도 잠시나마 내가 얻을 수 있었던 행복이 있었다.  

#당뇨 #군것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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