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YMCA 자전거 국토순례
이필구
입속에 있는 물을 모두 바닥에 밷어낸 후에도 마치 입에 넣어서는 안 되는 것을 머금었던 것처럼 "퉤~ 퉤~"하고 침을 뱉더군요.
이게 무슨 일일까요? "으악 수돗물이잖아" 참 기가 막힌 노릇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수도물을 몸이나 씻는 물이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물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수도물에 대한 불신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90년대 초반 낙동강 '페놀' 사건이후에 수도물에 대한 불신이 커졌습니다만, 그래도 수도물은 고도정수 시설을 거친 깨끗한 물입니다. 돈을 받고 물을 파는 생수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수도물을 정수해서 먹는 물을 만드는 정수기 회사들이 늘어나면서 수도물에 대한 불신이 더욱 커진 때문이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수질 전문가, 수도물 그냥 먹어도 된다던데?지금처럼 생수와 정수기가 많지 않았을 때는 대부분 수도물을 끓여 먹었습니다. 볶은 보리를 넣은 보리차나 볶은 옥수수, 결명자 같은 것을 넣어 물을 끓여 먹었지요. 그러나 집에서나 끓인 물을 먹었고, 밖에서 뛰어 놀 때나 학교 운동장에서는 그냥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수도물을 벌컥벌컥 마셨습니다.
그 때도 수도물에는 소독약인 '염소' 냄새가 좀 났습니다만 별로 개의치 않고 그냥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희 아이들은 수도물에 섞인 약품 냄새를 맡고는 기겁을 하더군요. 열 두세살 된 아이들은 아마 태어나서 한 번도 수도물을 그냥 먹어본 일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집안에 있는 정수기로 고도정수처리된 물을 먹었을 것이고, 정수기가 없는 곳에서는 페트병에 담아 파는 생수를 먹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목이 마르다고, 갈증을 참을 수가 없다고, 물을 더 먹겠다고 하던 아이들이 수도물 한 모금을 먹고 비명을 지르는 것을 보니 기가 딱 막히더군요.
제가 가깝게 지내는 시민환경연구소에서 일하는 활동가분이 방송에 출연하여 추가로 비용을 지불해야하는 생수나 정수기 대신 그냥 수도물을 끓여 먹거나 물을 받아 하루 밤 정도 재워 먹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수도물에서 소독약 냄새가 나는 것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고도정수처리를 거친 믿을 만한 물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수도물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는 아이들이 수도물에 대하여 이토록 깊은 불신을 가진 것을 보니 안타깝더군요. 수도물에 대해서 잘 모르는 아이들이 막연한 불신과 불안을 가지고 있고,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 소독약 냄새에 기겁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수도물을 그냥 먹어도 큰 탈이 없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만, 아이들은 모두 생수가 있는 보급차로 몰려가 버렸습니다. 아이들에게 수도물을 그냥 몸이나 씻는 물이지 사람이 먹는 물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수도물 한 모금을 입에 머금고 기겁하던 아이들 모습을 떠 올리며, 생수회사와 정수기 회사가 앞장서서 만들어 낸 수도물에 대한 막연한 불신을 회복시킬 수 있는 준비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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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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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 수도물이잖아, 목 말라도 수도물은 안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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