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시교육감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돈거래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5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소환 조사를 받기 위해 청사에 출두하자, 곽 교육감의 사퇴를 촉구하는 시민(사진 앞)이 시위를 벌이다가 경찰에게 저지되고 있다.
유성호
20년 지인으로서 곽노현을 말합니다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사건이 우리 사회를 폭풍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도덕성을 강조해온 진보교육감이 어찌 2억 원이나 되는 큰돈을 건네게 되었는가가 일단 주요 쟁점입니다.
하지만 그 외에도 다가 올 선거에의 영향, 언론의 보도태도, 유명 논객들의 발언이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이참에 교육감을 정치권의 손아귀에 집어넣고자 교육감 선거를 사실상 폐지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습니다.
어려운 고비에 처한 것 같습니다. 진보개혁세력 전체에 커다란 타격이 될 수도 있고, 한국 사회발전을 후퇴시킬 수도 있습니다. 신중하고 현명한 대응이 요청되는 상황입니다.
어찌 하는 게 정답인지 100% 확신은 서지 않습니다. 다만 본인은 사건 당사자인 곽 교육감이나 그와 절친한 친구로서 돈을 전달한 강경선 교수와 같은 학교에서 20년 이상 지내왔기 때문에 일반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접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 걸 털어놓으면서 사건을 보는 제 나름의 시각을 던져볼까 합니다.
물론 같이 지내온 처지라, 무의식적으로라도 가급적 곽 교육감이나 강 교수의 처지를 옹호하려는 치우친 글이 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은 했습니다만 100% 달성했는지는 자신 없습니다. 그래도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상황이나 논리를 알리는 의미는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본인은 작년에 해외연수 준비에 바빠 교육감 선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되고 있는 단일화 과정에 대해선 백지상태였습니다. 때문에 사건이 터지면서 한동안 머리가 멍했습니다. 특히 초기엔 검찰과 박명기 후보 쪽 이야기만 흘러 나왔기 때문에 더욱 황당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사건은 대충 정리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법률 쟁점은 동서 사이인 곽 교육감 측근과 박 후보 측근이 합의한 내용이 당시에 곽 교육감에게 보고되었는지 여부인 것 같습니다. 곽 교육감 측근은 당시엔 보고하지 않았고 선거 이후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된 곽 교육감이 기겁을 했다고 전했습니다.
합의 전날 곽 교육감이 돈거래는 안 된다고 협상자리를 박차고 나온 바 있으므로, 어쨌든 단일화를 성사시키고자 하는 마음에서 실무자가 곽 교육감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일을 진행시켰다고 보는 게 논리적으로 타당할 것 같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게 진실인지 어떤지는 앞으로 재판의 쟁점이 될 것이므로 본인이 성급하게 단정하지는 않겠습니다. 여기서는 그와는 다른 몇 가지 주요 사안에 대해 본인의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괴짜' 곽노현 1억 원 그냥 주기도첫째로, 과연 '선의로' 2억 원을 주었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럴 리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20만 원도 아닌 2억 원을, 형제도 아닌 남에게 준다는 건 소가 웃을 일로 여겨질 겁니다.
세상 인심으로 보면 너무나 당연한 반응입니다. 하지만 곽 교육감과 강경선 교수를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본인에겐, 선의로 그랬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사건이 터졌을 때 곧바로 머릿속에 들어왔습니다.
왜냐하면 두 사람은 상당히 괴짜이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과 저는 대학 학번도 같고 세계관도 많은 부분에서 비슷해 어울릴 기회가 자주 있었습니다. 강 교수랑은 우리 대학 민주화 과정에서 함께 일한 바 있고, 곽 교육감과는 재벌개혁 운동을 같이 추진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함께 지내오면서 두 사람이 대단히 독특하다는 느낌을 갖게 된 것입니다. 지금 인터넷에선 조금 퍼졌고 본교 교수들 사이에선 이미 예전부터 어느 정도 알려진 사안이 단적인 예입니다.
20년 쯤 전의 일입니다. 그때 강 교수가 저보고 과천에 집을 마련해 종교 관련 사업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웬 뚱딴지같은 이야긴가 했습니다. 강교수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고 저는 그렇지 않아 그 대화는 더 이상 진전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강교수는 그 집을 얻기 위해 곽 교육감에게서 1억 원을 그냥 받고 돌려주지도 않기로 했다고 합니다. 당시 1억 원이라는 거액을 빌려주는 것도 쉽지 않지만, 돌려주는 건 도리어 우정을 해친다고 해서 그냥 줬다는 건 일반인의 상식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는 일이지요.
이런 사람들이므로 박명기 후보가 선거로 인해 궁색한 처지에 놓였을 때 그냥 넘어가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특히 곽 교육감은 선거비용 35억 원을 보전받은 데 반해 박 후보는 한 푼도 건지지 못 했던 상황입니다.
더욱이 박 후보가 사퇴해 준 덕분에 당선된 곽 교육감입니다. 사전에 약속한 대가로 돈을 지급했다면 불법 행위입니다. 하지만 돈을 건네지 않아도 되는데도, 고마운 마음에서나 혹은 박 후보의 자살 운운하는 심각한 처지를 차마 그냥 볼 수 없어서 돈을 주었다면, 그건 선의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곽 교육감이 본인에게 물어봤다면, 본인은 절대로 주어선 안 된다고 했을 것입니다. 불필요한 위험을 초래해선 안 된다는 게 본인 생각이니까요. 하지만 강 교수는 달랐습니다.
그게 강 교수의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좋게 말하면 순수하고 나쁘게 말하면 순진하지요. <동아일보> 기자가 검찰에서 풀려난 강 교수를 찾아왔을 때, 강 교수는 그 기자에게 선의로 취재한다고 약속하면 응하겠다고 했답니다.
아니 <동아일보>가 어떤 신문인데 그런 식으로 취재에 응하는가요. 강 교수가 단일화 대가로 돈을 준 게 아니라고 기자에게 말했는데도, 9월 2일자 신문 톱으로 "강 교수가 검찰에서 단일화 대가로 돈을 주었다는 발언을 했다"고 완전한 왜곡보도를 했습니다.
강 교수는 이처럼 세상 물정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편이라, 오해와 물의의 위험성을 감수하고서라도 어려운 박 후보를 돕자고 나섰을 수 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이 글을 씀에 있어서 곽 교육감은 물론 강 교수와도 이야기를 나눈 바 없습니다.)
물론 신이 아니라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을 100% 신뢰할 수는 없습니다. 혹시 선의가 아니라 사전에 곽 교육감도 동의한 합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돈을 줬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말로 선의로 돈을 줬을 가능성도 크다는 점을 이해해 주면 좋겠습니다.
정말 '선의'라면, 사퇴하지 하지 않는 게 교육계 수장다운 처사둘째로, 곽 교육감은 법적인 판단이 내려지기 전에 사퇴해야 마땅한가 하는 문제입니다. 보수수구 신문은 말할 것도 없고 진보개혁 신문도 연일 사퇴 압력을 가해왔습니다. 민주당의 일부 정치인도 초기엔 사퇴요구에 가세했습니다. 일부 교육 관련 단체나 진보적 평론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사건의 진상이 점차 알려지면서 여론은 반전되어 갔습니다. 민주당도 생각을 바꾼 듯합니다. 검찰이나 박 후보 측의 이야기가 사실과 많이 다르다는 점이 알려졌고, 또 새로운 여론 매체인 트위터의 반응도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다만 곽 교육감의 사퇴 여부는 기본적으로 여론의 눈치를 보고 결정할 사안은 아닙니다. 공직자 처신의 문제입니다. 사퇴가 마땅하다는 쪽은 곽 교육감이 일반 정치인이 아니라 바른 삶을 강조하는 교육계 수장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본인도 그런 관점에서 곽 교육감이 사퇴하는 게 옳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민주당의 초기 반응에서처럼 10월 선거에 대한 악영향 따위를 근거로 한 게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