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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이색형상 돌이 많지만, 세상에 이럴 수가 있을까. 아기주먹만한 돌에 예수 형상과 달마 형상이 함께 있다니. 누군가 그린 게 아니라 자연적으로 그렇게 된 거라니. 이건 트릭도 '낚시질'도 아니다. 국내 최초로 대중매체에 공개되는 신비한 자연석 그대로의 모양이다.
40년 넘게 이색수집가로 활동하고 있는 유윤상씨는 그 방면에서 '골동품 감정전문가'로도 정평이 나있다. 이런 그가 이 돌을 수집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땐, 그는 며칠 밤을 설레어 잠을 못 이루었단다.
'달마예수 형상' 돌은 '빙산에 일각'
그가 보여준 '달마예수 형상' 돌은 사실 '빙산에 일각', '새 발의 피'다. '성모 마리아 형상'을 한 자연석, 한 폭의 자연수묵화 같은 형상의 자연석, 기암절벽 산을 축소한 모양의 바위 등 신비한 형상을 한 돌들이 집안 곳곳에 숨어있다.
또한 진품 고려청자, 조선시대 궁중 병풍, 이중섭의 은박지 그림, 백범 김구의 친필, 김정희의 '죽로지실'을 판각한 현판 등 세상에 하나 뿐인 진품명품들이 가득하다. 그밖에도 조선시대 갓, 족두리, 신발, 상 등 서민들이 쓰던 것들이 방마다 가득이다. 40년 넘게 100년 전 것이면 뭐든 모아온 결과다. 사실 한정된 지면으로 인해 보여주지 못하고, 말하지 못한 것들은 태산을 이룬다.
그가 이렇게 수집하는 일에 미치기 시작한 것은 17세 때 였다. 책이 귀하던 시절, 우연히 접한 고서들을 보고 수집에 매력을 느꼈다는 것. 엿장수가 추사 김정희의 현판을 싣고 가는 것을 보고 따라가서 수집한 것이 첫 짜릿함이었단다.
전국은 물론 세계 각국 돌며 수집하다
이렇게 시작한 '수집 습관'은 멈출 줄 몰랐다. 어디에 진귀한 것이 있다면, 꼭 찾아 갔다. 오래된 것이 있다면, 꼭 손에 넣고 말았다. 이런 것을 모으기 위해 그동안 만난 사람만 해도 수천 명은 족히 넘는다. 대한민국 곳곳은 기본이고, 이색적인 돌 수집과 골동품 공부를 위해 일본, 필리핀 등 아시아와 유럽 각국을 돌아다녔다.
수집하러 갔다가 그 주인이 바로 승낙하면 다행이지만, 몇 날 며칠을 조르고 조르기도 했다. 결국 구입하기도 하지만, 승낙받지 못하는 것도 부지기수였다.
초창기에는 천만 원 상당의 고가를 지불하고 집에 가져왔다가 가짜라는 것을 발견하고 땅을 치고 후회한 적도 있다. 몇 날며칠 '이 길을 내가 왜 택했던가'며 자괴감으로 불면의 밤을 보내기도 했다. 비싼 인생수업료라 생각하며 한 번도 다시 물린 적이 없다니 그의 자존심도 대단하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달려가 고가의 물건을 수집하려다 퇴짜를 맞고 서울로 오는 경우도 허다했다. 다시 그 주인의 승낙전화가 오면 다시 부산으로 달려가 그 물건을 수집했다. 그렇게 가져간 현금으로 물건을 구입하는데 다 쓰고 나니 곤란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돌아오는 고속도로 상에서 연료가 바닥이나 차가 멈추어 섰던 것. 통으로 고속도로주유소에서 기름을 사서 겨우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다. 물론 밥을 굶은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여기까지 오기에 그가 흘린 땀과 속으로 흘린 눈물은 그가 모아온 수집품만큼이나 많다.
이렇게 열정을 다하다보니 주위에선 "미쳤어, 돌았어. 밥이 나오나 떡이 나오나. 돈이 어려우면 그런 거 팔아서 보태지 뭐하는 짓이냐"며 만류 했다고. 그럴 때마다 그는 자신을 다잡았다. '나에게 꿈이 있다'며. 또한 평생 옆에서 함께 한 아내의 수고를 떠올렸다.
40년 꿈, 아내의 이름으로 박물관 건립하는 것
그는 요즘 안성 보개면 남사당 공연장 가는 길 즈음에 산다. 서울에서 귀향한 지 3년이다. '옛날마당 구경자리'란 조그만 전시장을 운영한다. 거기서 골동품 마니아들과 의사소통을 한다. 지금도 거의 매일 무언가를 모으고 있다.
자신이 모은 물건을 팔아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옛날마당 구경자리'엔 '옛날 것이면 무엇이든 삽니다'란 문구가 눈에 띄게 걸려있다. 이제 환갑이 다된 노구에도 그의 열정은 이팔청춘이다.
40년을 꾸어온 그의 꿈은 단 한 가지. 박물관을 내는 것. 그것도 자신과 함께 해준 아내의 이름으로. 주위에서 돌았다고 미쳤다고 할 때, 수많은 밤을 불면으로 지새울 때, 고가를 주고 사온 짝퉁으로 인해 속이 쓰릴 때도 말없이 함께 해준 아내에게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하는 그의 진심이다.
이 모든 것을 지난 6일 그의 자택에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사람으로서 그의 꿈이 이젠 꿈으로만 있지 않기를 바란다면 나의 지나친 바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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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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