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2억 원의 돈을 건넸다고 시인한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29일 오후 서울시의회 본회의장으로 향하며 취재진의 질문공세를 받고 있다.
유성호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작년 교육감 선거에서 후보단일화 상대였던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뒤늦게 수억 원을 준 사건이 연일 논란이 되고 있다.
박 교수의 체포 소식이 26일 밤 SBS뉴스를 통해 처음 알려지고 그 다음날 조간신문들이 '교육감 단일화' 금품거래 의혹을 제기할 때만 해도 이번 사건이 검찰의 무리수가 아니냐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주민투표 무산과 오세훈 서울시장 사퇴로 예정에도 없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치러야 하는 공안세력의 작품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사건의 흐름을 바꾼 계기는 28일 오후 곽 교육감(이하 '곽노현'으로 통칭한다)의 기자회견이었다.
"총 2억 원의 돈을 박명기 교수에게 지원했습니다. 정말 선의에 입각한 돈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드러나게 지원하면 오해가 있을 수 있기에 선거와는 전혀 무관한 저와 가장 친한 친구를 통해 전달했습니다."기자회견 전까지만 해도 곽노현을 비난하는 목소리는 오롯이 조중동과 한나라당, 보수세력의 몫이었다. 그러나 이후에는 사정이 복잡해졌다. 작년 6.2 지방선거 이후 곽노현을 지원했던 진보세력이 '곽노현 책임론'와 '곽노현 방어론'으로 쪼개진 셈이다.
각각의 주장을 펴는 사람들을 나눠보면 이렇다.
▲ 곽노현 책임론 : 곽노현이 좀 더 납득할 만한 해명을 내놓거나 그렇지 않으면 용퇴해야 한다 - 손학규 민주당 대표, 박주선·정세균·조배숙 최고위원,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 금태섭 변호사, 진중권 시사평론가 등. ▲ 곽노현 방어론 : 스스로 무죄를 주장하고 있고, 법정에서 혐의를 다퉈볼 만하다. 당분간 사태 추이를 지켜보자. (일부는 더 나아가 검찰의 언론플레이를 공격하자는 주장) - 천정배·전병헌·김진애 민주당 의원,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심상정 진보신당 고문, 최재천 변호사 등.기자는 곽 교육감의 2억 원이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문제가 된다는 입장이다. 머리로는 곽노현의 정책을 지지하면서도 가슴으로는 곽노현의 행위를 용납할 수 없는 이유를 지금부터 설명하겠다.
1) 곽노현의 2억 원 대가성 논란곽노현 스스로 박명기에게 2억 원을 준 사실을 털어놓은 마당에 돈의 성격은 유일무이한 쟁점이 됐다.
일단,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갖는 의문은 곽 교수의 기부 대상이 왜 하필 박명기인가에 모아진다. 1000만 서울시민 중에 형편 어려운 사람이 박명기만은 아닐 텐데 말이다.
기자가 40년을 살았지만 '곽노현식 기부'를 본 적이 없다. 기부를 해도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에게 베푸는 '깔끔한' 기부들이었다. 더구나 공직자가 선거운동으로 재산 날린 경쟁자, 그것도 돈 주면 선거법 위반 시비가 날 사람에게 2억 원의 뭉칫돈을 선뜻 건네는 '기가 막히는 우연'은 없었다.
곽노현 사례와 비교해볼 만한 사례가 있긴 하다.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예비후보였던 경쟁자에게 1000만 원을 쥐어준 시의원이 있었다. 문제의 시의원은 "선거결과와 상관없이 지역화합 차원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대를 도와주려는 순수한 마음에서 지급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여지없이 당선무효형을 선고했다.
이런 판결과 달리 혹시 곽노현이 법정에서 승소하게 된다면 법질서의 혼란으로 이어질 것은 자명하다. 단일화로 후보를 양보한 사람에게 일정한 시점이 지난 후 온갖 형태의 보상을 베푸는 일이 공공연히 판칠 수 있기 때문이다.
백번 양보해서 '곽노현 미담'을 받아들이려고 해도 ▲ 돈을 주기에 앞서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전달 방법은 투명했는지 ▲ 2억 원 이상의 돈을 더 줄 계획이 있었는지 등등 곽 후보자가 추가로 해명해야 할 게 너무도 많다.
검찰과 언론에 "입을 다물라"고 다그치기 전에 곽노현이 좀 더 솔직해야 할 이유다. 오죽 했으면 곽노현을 지방선거에서 음양으로 지원했던 시민·교육단체들이 어제(30일) 한꺼번에 모여 곽노현에게 "제기된 각종 의혹을 국민 앞에 소상히 밝히라"고 요구했을까. 곽노현은 이번 사건에서 자신의 우군에게조차 미더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