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형 식품 체인점 중 하나인 프레드 마이어에서. 요즘은 웬만한 대형 식품점에는 '아시안 푸드' 코너가 있어 이렇게 쌀이나 간장 등을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한국에서 먹었던 바로 '그 맛'의 제품을 구입하기는 어렵다.
이유경
올 8월로 12년째 미국 생활을 맞이한 나. 한인 인구 많기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도시에서도 살아봤고 라오스 출신의 아줌마가 하나밖에 없는 한국 식품점을 운영하는 작은 도시에서도 살아봤다. 그리고 지금은 한인 인구는 제법 되나 한국 음식점은 없는 동네에 산다.
로스앤젤레스나 뉴욕, 시카고, 애틀랜타, 시애틀 등 한인 인구가 많은 동네에는 대형 한인 식품 체인점도 즐비하다. 그리고 툭하면 '몇 달러 이상 구입시 10파운드 쌀 한푸대 증정!' 하는 식의 광고도 많고, 각종 반찬과 먹거리를 싸고 손쉽게 사 먹을 수 있다.
하지만 한인 인구가 적은 동네, 가령 예전에 살던 네브래스카 주의 한 동네는 사정이 달랐다. 어느날 내가 그곳에서 유일한 한국 식품점의 주인 아줌마에게 제품의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했다, 간 크게도. 그러자 아줌마는 "사지 마, 사지 마!(Don't buy, don't buy!)"라고 응수했다. 이게 바로 '손님이 아니라 주인이 왕'이라고 하는 거다. 당시 우리 동네 한국 사람들은 불친절한 이 가게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그렇게 불평하면서도 결론은 항상 "그래도 이렇게 가게 열어준 게 어디야, 감사해야지" 이랬다.
때문에 한국에 계신 부모님은 우리가 뭘 먹고 사는지 걱정이 많으시다. 종종 전화 너머로 "먹고 싶은 반찬 있으면 말해. 보내줄게!"라고 하시지만, 번번이 그렇게 받아먹을 수는 없는 노릇. 때문에 한인 식품점이 많은 대도시로 여행을 갈 일이 생기면 차에 가득찰 정도로 장을 봐왔다. 또, 출장 가는 남편에게 필요 이상의 큰 가방을 들려보내 가방 가득 한국음식을 장 봐오도록 부탁하기도 했다.
그렇게 힘들게 살지 말고 그냥 미국 음식에 적응하라고 충고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0여 년간 내 경험과 주변을 살펴보면, 어렸을 때부터 한국 음식, 밥을 먹고 자란 사람들은 정말 어쩔 수가 없다. 하물며 미국에서 태어나 영어만 줄곧 쓰는 우리 아이들도 학교에서는 피자에 마카로니 치즈를 먹을지언정 집에서 배고프면 미역국에 밥을 달라거나 김에 밥을 싸달라고 하니, 어쩌나? 글자 그대로 먹고 살려면, 한국 음식을, 밥을 해 먹을 수밖에 없다.
그런 탓에 이 곳에서 한국 음식은 그저 많은 종류의 음식들 중 하나로 끝날 수 없다. 어렵고 비싸게 마련한 재료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먹을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 바로 한국 음식이다. 또, 우리 동네로 갓 이사온 이웃의 가족들, 내 시름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은 친구들, 일주일을 끝내고 주말 저녁 편하게 함께 자리한 동료들, 멀리서 나를 보기 위해 달려와 준 친구에게 나의 각별한 마음을 전하는 표시다.
미국에서 순대 뽑아봤어요? 안 해 봤으면 말을 말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