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남소연
<프레시안>의 기획위원이자 저명한 정치평론가인 고성국의 비평에도 성한용의 것과 유사한 점이 있다.
"대중이 박근혜에게 느끼는 매력은 1차적으로 그의 외모와 행동거지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50대 후반에 접어들었지만 박근혜는 단아하고 맵시 있다. 서글서글한 미소와 품위 있으면서도 겸손한 태도는 대중에게 사랑받는 스타의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다. 그는 스타킹이 '빵꾸나서' 창피했던 경험 같은 에피소드를 약간의 여성적 수줍음에 얹어 얘기하곤 하는데, 이런 '소탈한' 화법은 적대적 감정을 갖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녹여버릴 만큼 호소력이 강하다."(2010년 10월 28일 <프레시안> '박근혜론')고성국은 '박근혜가 차기 대통령에 당선될 확률은 90% 이상'이라는 신념을 스스럼없이 피력하는 정치평론가이다. 그처럼 박근혜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정치평론가는 보수, 진보를 통틀어 찾아보기가 어렵다.
"박근혜의 일기를 보면 이런 게 나와요. 1961년 5월 16일 새벽, 우리 역사에 어둠이 닥친 날이죠. 그런데 박근혜 입장에서 그날은 아버지가 목숨을 걸고 나라를 구하러 간 날입니다. 감성 자체가 그렇게 만들어진 거죠. 박근혜의 '판문점 발언' 같은 게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건 그런 멘털리티의 반영인 거죠. 그런데 이런 모습이, 우리나라의 정치풍토에선 강점으로 작용합니다. 이명박 이하 사사롭게 정치한 이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런 그들과 그렇지 않은 박근혜를 구별할 수 있는 거죠. 박근혜 지지를 사람들이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는 근거가 여기에 있어요."(2011년 7월 24일 <프레시안> 정치대담 중에서)정치인을 평가하는 것은 정치평론가들의 재량에 속한다. 그러나 교묘히 5·16 쿠데타까지 재료로 삼으면서 박근혜를 긍정적으로 논의하는 것이 과연 역량 있는 정치평론가의 몫인지는 재고해 보아야 한다.
또한 고성국은 박근혜의 '판문점 발언'(박근혜가 아버지의 죽음 소식을 접하고 했다는 말 '휴전선은 괜찮은가요?')을 근거로 그의 애국심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발언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이견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고성국 같은 전문가는 그것을 '애국심의 발로'로 해석하는지 몰라도 나처럼 범상한 시민기자의 눈으로는 전혀 달리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죽은 1979년 당시 박근혜 의원은 아무런 정치적 직함도 없었다. 국가안보를 걱정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것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확인하는 식의 질문을 던지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외람된 일로 비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시 박근혜는 식탁에서 아버지가 주는 날밤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투정을 부리는 수준의 자식이었을 따름이다. 만약 그가 사려 깊은 자식이었다면 휴전선이 걱정되었을 때 확인해 볼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을 터이다.
다음으로 고성국은 박근혜가 '퍼스트레이디'로서 정치수업을 한 것이 큰 강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박근혜는 엄밀히 말해서 '퍼스트레이디'가 아니라 급서한 어머니의 역할을 계승한 자식이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설령 박근혜가 '퍼스트레이디'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강점이 될 수는 없다고 보는 시각도 온존한다. 육영수 여사가 서거한 1974년 이후는 유신시대였다. 이 시대의 정치는 결코 정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유신통치는 민주주의의 천적인 '파쇼정치'였다. 이런 환경의 정치 체험을 일방적으로 '정치 수업'이라고 규정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성한용과 고성국 두 사람에다 추가하고 싶은 인물이 <딴지일보>의 김어준이다.
"박근혜한테는 묘한 미망인의 아우라가 있어요.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미망인 재클린의 아우라죠. … 그런데 적어도 공개적으론 미국 언론이 재클린에 대해 비난하지 않습니다. 굉장한 비련의 주인공이고, 그녀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는 거죠. 비극적 요소에다가 부와 명예를 가졌고, 여성에겐 로망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그녀를 욕하는 건 일종의 금기인거죠. … 박근혜도 양친 모두를 비명에 보낸 가련한 딸이죠."(<프레시안> 대담 중에서 김어준 발언)일단 재클린은 케네디 대통령의 딸이 아닌 부인이었다. 김어준은 의도적으로 미망인과 딸을 구별하지 않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케네디의의 바람기는 천하가 다 아는 일이지만, 이에 맞서 영화배우, 자동차회사 사장 등과 맞바람을 피운 재클린도 만만치 않은 여자였다. 남편 사후에는 갑부만을 골라 전전한 미망인 재클린에 대하여 미국 내 건전한 여론층은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부정적이다.
그런데 김어준은 박근혜를 칭찬하면서 재클린을 '롤모델'처럼 제시했으니 이것은 희극적인 동시에 박근혜 의원한테조차 되레 모욕일 수도 있겠다. 사족 같지만 한 가지 더, 여기서 왜 '아우라'라는 국적 불명의 언어가 사용되어야 하는지도 잘 알 수가 없다.
"(박근혜는) 권력의 정점에 서 있고, 생활에 있어서도 자유롭습니다. 돈 벌 필요가 없잖아요? 생활을 아는 여성들의 로망이 될 법도 한 거죠. 이런 정서적 지지와 로망을 정책이나 윤리로 무너뜨릴 순 없을 거라고 봅니다."(위의 대담 중 김어준 발언 발췌)김어준은 박근혜가 '권력의 정점에 서 있고 돈 벌 필요도 없다'는 점에서 '생활을 아는 한국 여성'의 '로망'이 될 법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한국 여성을 크게 오해하거나 비하하는 발언이다. 그는 무슨 근거로 '생활을 아는 한국 여성'이 이렇게 권력지향적이고 물질적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일까? 이런 발언들은 개인의 왜곡된 가치관의 반영이자 당사자의 주변 체험 한계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정치평론가가 포기해서는 안 되는 미덕들이처럼 박근혜 의원이 소싯적 아버지가 주는 날밤을 거부한 행동이나 아버지의 죽음 직후 휴전선에 예민한 관심을 표시한 발언을 한 행위 등에는 얼마든지 다른 관점이 있을 수가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박근혜에게서 '귀티'를 본다거나, '재클린의 아우라'를 느낀다거나, '비범한 멘털리티'를 재단하는 것 등은 정상적인 국민이 아니라 성한용과 고성국과 김어준에 한한 일일 수도 있다.
물론 이 글에 언급된 세 전문가는 보수진영을 지지하는 인사들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때로는 누구보다도 신랄하게 한나라당의 실책을 지적해 온 인사들이다. 평소 그들은 대체로 '건전한 진보'의 성향을 보여 왔다. 다만 보수언론의 정치평론은 진보·개혁 국민에게 별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진보 또는 진보연하는 인사들의 발언이 미치는 영향력은 의외로 크다는 점에 유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의 발언은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박근혜 의원의 정체성을 왜곡해서 전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 세 분의 실명비판을 가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정치인을 평가할 때 외모나 이미지 따위를 감성적으로 재단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일단 그것은 정치평론의 본령이 아니다, 또한 정치인이 대중에게 드러내는 이미지란 허상인 수가 더 많다. 그렇기에,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정치인을 평가할 때에는 도덕성과 능력과 정책, 그리고 시대정신이나 역사의식 등을 마땅히 논의해야 한다.
앞으로 서울시장 보선과 총선 그리고 대선으로 이어지는 정치의 계절이 다가온다. 이에 따라 통속적인 정치평론들이 난무할 것이다. 대중과의 소통을 중시한 나머지 정치평론의 요체를 포기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정치평론가라면 모름지기 인간을 투시할 수 있어야 하고 역사를 관통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이를 정교하게 문체화하는 언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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