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저녁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최종 투표율이 발표된 직후, "투표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입장을 밝힌 오세훈 서울시장이 굳은 표정으로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남소연
아무도 그에게 대선에 출마하지 말라고 사정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에게 시장직을 걸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는 시의회와 담을 쌓고 '불통'으로 일관하더니, 끝내 '고집'을 꺾지 않고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강행했다.
난데없는 '대선 불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그것으로는 별로 '약발'이 안 먹히자 질질 짜며 시장직을 걸겠다고 무릎을 꿇었다. 단 하나의 목표, '복지포퓰리즘에 맞선 전사' 이미지와 '보수의 아이콘' 브랜드를 쟁취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는 소원대로 '낙동강 전선'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보수의 전사'가 되었다.
관련기사 : '미운오리' 오세훈, 낙동강 급식전선에서 오리알 되나).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아이들 밥그릇 빼앗기에 시장직을 건 희한한 투표 게임이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판을 확 키운 '서울판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처음부터 '오세훈에 의한, 오세훈을 위한, 오세훈의 정치도박'이었다. 영화에 비유하면, <조중동>이 기획하고, 복지포퓰리즘추방 국민운동본부 '어버이'들이 대거 엑스트라로 출연한 'B급 영화'였다.
수준 높은 관객은 결말이 빤한 이런 'B급 영화'에 환호할 까닭이 없다. 서울 시민은 오세훈이라는 주연배우를 띄우기 위해 '조중동'과 '어버이'들이 급조한 이 싼티 나는 'B급 영화'를 외면했다. 이제 흥행에 실패한 '도박사 오세훈'을 기다리는 것은 '정치적 파산'이다.
'진보 vs. 보수' 아닌 '상식 vs. 비상식'의 대결무상급식 주민투표는 진보와 보수, 분배와 성장의 대결이 아니었다. 그것은 상식과 비상식의 대결이었다. 오세훈은 '여소야대'로 바뀐 서울시의회 상황 자체를 못 견뎌 했다. 그는 서울시의회가 무상급식 조례안을 의결하자, 6개월간 시의회 출석을 거부한 채 주민투표라는 '출사표'를 던지면서 이렇게 천명했다.
"의회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시장이란 정치적 오명을 남기더라도 절대 타협하지 않겠다." 그 나름으로 비장감을 표출한 것일 터이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도 싶다. 그러나 '의회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시장'은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독재'라는 오명을 듣더라도 '불통'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자라면 그런 정치적 오명을 남겨선 절대 안되는 것이다. 오세훈의 비극은 바로 거기서 시작되었다.
2004년 1월 6일 장래가 촉망되던 젊은 의원이 한나라당 당사의 기자회견장에 섰다. 한나라당내 소장개혁파 모임인 '미래를 위한 청년연대(미래연대)' 공동대표로서 총선을 앞두고 '5·6공 인사 퇴진론'을 주장해 물갈이 논란을 증폭시켰던 오세훈 의원이었다. 그는 이날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정치가 아니라 전쟁을 하듯 늘 갈등만 했던 게 부끄럽다."그의 말은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다. 불출마 선언에 앞서 지구당 위원장 사퇴, 후원회 해체 주장 등 당시로는 여야를 통틀어 누구보다 개혁적 실천을 해온 대표적 개혁파였기 진정성이 느껴졌다. 서울 강남을 지역구로 둔 그는 한나라당에서 그 누구보다도 공천과 재선이 무난한 의원이었기에 그의 불출마는 울림이 컸다. 그러나 기자의 의무는 국민이 궁금해하는 일말의 가능성마저 확인하는 것. 어떤 기자가 물었다. 서울시장 출마설이 있던데? 그의 답은 이랬다.
"지금 그만두면 그 길로 가나? 그게 연관이 되나? 글쎄, 서울시장 선거가 2년 이상 남았는데 그것을 위해 벌써 그만두는 정치인이 있었나?"오세훈의 '대통령과의 담판'에 담긴 메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