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뉴스) 주종국 특파원 = 김계관 등 북한 대표단 일행이 북미 고위급대화 참석을 위해 지난 29일(현지시간) 오전 뉴욕 맨해튼 밀레니엄유엔플라자 호텔을 나서고 있다. 뒤쪽은 최선희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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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위원장이 러시아의 전력과 가스를 공급받는다는 건 향후 6자회담은 물론 북한의 생존전략에 매우 깊은 의미를 가진다. 미국의 '선 비핵화 후 경제지원' 요구에 '경제적 생존 대책이 전제된 비핵화' 카드를 구체적인 백업 플랜을 바탕으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번 러시아 방문이 김계관 제1부상의 미국 방문과 그 직후 일련의 협의 과정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해석이 가능하다.
먼저 김계관 제1부상 방미시 미국이 내놓은 북한이 취할 5대 선제조치란 무엇인가? 미국은 지난 7월 28일 뉴욕을 방문하여 일주일 정도 머문 북한 김계관 제1부상에게 6자회담으로 가기 위한 필요한 조치(necessary steps), 한국정부 용어로는 선제조치(pre-steps)로 (1) 미사일 시험발사 모라토리움, (2) 추가 핵실험 금지, (3) 농축우라늄 활동 중단, (4)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찰관 복귀, (5) 대남 군사도발 금지 등 5가지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일단 즉답을 피하면서 나름의 입장을 내놓고 다음 회담의 여지를 남긴 채 베이징을 통해 귀국했다. 이때 베이징에서 북한 김계관과 중국 우다웨이 부부장이 만났다. 그래서 나온 게 미국이 취해야 할 5가지 선제조치, 즉, (1) 유엔 제재 해제, (2) 인도적 식량지원, (3) 지속적인 미북 접촉 및 회담, (4) 평화협정 논의 개시, (5) 관계정상화 논의 개시이다.
중국은 이를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른 균형된 요구로 평가했다. 현재 미국과 북한은 일단 물밑 협의를 지속한다는 전제 아래 한국전쟁시 북한 지역에서 전사한 미군유해발굴사업을 전개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리고 미국은 약간의 인도적 식량지원 의사를 발표했다. 5 대 5 선제조치는 당분간 핑퐁게임 양상이 될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북한은 이를 러시아의 중대계획으로 덮어 씌워버렸다.
미국이 5가지 선제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했는데 자신은 핵물질 생산과 핵실험 잠정 중단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다며 2가지 선제조치를 해소해 버렸다. 영변에서 플루토늄 활동이 진행중이라는 정보가 없는 현 시점에서 핵물질 생산 중단은 우라늄 농축활동의 중단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핵실험 중단 의사 역시 플루토늄 재고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고려할 때 농축우라늄 활동을 중단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미국이 야심차게 내놓은 6자회담 재개의 조건은 힘을 잃게 된다. 일단 6자회담을 열어서 북한이 원하는 유엔제재 철회와 미북 관계정상화 및 평화협정 논의를 시작하면서 비핵화 논의에도 시동을 걸어보자는 북측의 주장에 러시아와 중국이 동조할 때 과연 미국과 한국이 계속 5대 선제조치에 연연하기 쉽지 않다. 왜냐하면 북한은 자신의 5가지 선제조치 요구를 김정일 위원장의 '전제조건없는 6자회담 재개' 발언으로 거둬들였기 때문이다.
'북한식대로의 국면전환' 모색, 무엇을 노리는가? 북한은 금년 들어 미국과 유럽,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적극적인 유화조치를 취해 왔다. 1월 북·미 고위급 군사회담 제의, 3월 독일에서 비핵화와 미사일 관련 미·북 기술협의, 4월 카터 전 대통령 방북, 5월 미 국무부 킹 특사와 식량실사단 북한 방문, 억류 미국인 석방, 6월 북한 태권도 시범단이 3년 8개월만에 미국을 방문했고, 북한 중앙통신과 AP통신사 평양 종합지국 개설합의 등 미국과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각별히 공을 들였다. 최태복 의장이 영국을 방문했으며, 영국군 6·25전사자 유해송환이 5월에 이루어졌다.
김정일 위원장이 금년 5월 방중을 포함, 지난 1년 사이 3차례나 압록강을 넘었다. 중국측에서도 공안부장과 조직부장이 북한을 방문하였다. 나선 및 황금평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올해 1월부터 4월 사이 북·중 무역은 14억 3000만 달러에 달했다. 전년 같은 기간(7.2억달러) 대비 99.2%가 급증했다.
경제재건 움직임도 활발하다. 소위 2012년 '경제강국' 건설이라는 축제 분위기 조성을 위해 경제성과 도출에 집중하고 있다. 대규모 건설공사 가운데 2012년까지 마무리할 수 있는 희천발전소와 만수대 지구 건설 사업을 진행시키고 있다. 주민들에게 공급할 식량과 생필품 확보에 부심하고 있다.
이에 대한 이명박 정권의 통일부의 인식은 참으로 구태의연하다. 북한이 중국과의 협력, 특히 고위급 교류와 경제협력을 강화하며 지원을 확보하고 나선·황금평 등을 중심으로 경협을 지속적으로 활성화할 것이며 러시아와 '전제조건없는 6자회담 재개'등 비핵화 공조는 물론 의외의 경협 프로그램도 추진하리라는 정보를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이 모든 움직임은 실질적 성과를 거두지 못하리라 전망한다. 북한이 한국에 손을 벌리지 않고 살아갈 수 없으며, 결국 손들고 나올 수 밖에 없다는 '희망적 관측(wishful thinking)'이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 전부이다.
북한이 노리는 것은 아마도 한국 이명박 정부의 이와 같은 나태하고 여유로운 상황인식과 오판일 수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을 가든 러시아를 가든 별 볼일 없을 것이라는 방심의 틈을 노려 미국과 고위급 회담을 유지하여 인도적 식량지원을 부분적으로나마 얻어냈고, 러시아를 방문하여 에너지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했다.
중국의 정치적 외교적 지원과 경제협력, 러시아와 에너지 협력을 통해 비핵화는 장시간을 두고 서서히 풀어가도 된다는 북·중·러 3국간 의견 조율이 급속히 이루어지고 있다. 당장 경제난 해결에 효과가 크지 않을지 모르나 북한이 앞으로 6자회담과 남측을 대하는 태도에는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장기 생존전략, 즉, 중러와 협력을 통한 경제개발 추진의 흐름 속에서 비핵화 등 6자회담을 미국이 준비되는 정도에 맞춰 천천히 추진해도 좋다는 방침을 이미 집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위성락 본부장은 베이징에서 김계관 제1부상을 만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