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일인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가회동 재동초등학교 교실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주민들이 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남소연
오세훈 시장은 왜 이다지도 엄청난 일을 벌인 것일까? 그는 주변의 우려와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무언가 의도하고 목적하는 바가 있지 않고서는 이렇게까지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누가 보아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았던 주민투표였고 그것을 모를 리 없는 그였다. 그런데도 그는 시종일관 거침없이 일을 추진했다. 혹시 그는 '성공하면 대박이겠지만 실패해도 전혀 밑질 것이 없다'는 제 나름의 이상한 셈법을 품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었을까.
투표 당일 오 시장은, "져도 의미 있는 투표"라고 말했다. 이 말이 뜻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투표에서 질 경우 한나라당이나 보수세력은 큰 손해를 입을 것임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결과야 어떻든 의미 있는 주민투표가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대관절 '누구에게 의미가 있다는 것이었는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앞에서 나는 이번 주민투표를 '오세훈의 정치 도박'이었다고 규정했다. 일단 이번 주민투표는 정책이슈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여야의 정치 대립으로 촉발돼 진행된 것도 아니었다. 친박은 물론 남경필, 원희룡, 정두언 등 상당수 비중 있는 한나라당 의원은 처음부터 주민투표를 반대하거나 아예 무상급식에 찬성했다.
사실 작년 12월 오세훈 시장이 서울시 의회의 무상급식안을 거부했을 때만 해도 '예산 문제로 인한 의회와의 감정대립' 수준으로 보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유심히 볼 때 그가 선택하는 언어가 대단히 과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망국적 복지포퓰리즘과의 전쟁을 불사한다"고 했으며, 심지어는 "주민투표는 낙동강 전투라서 한 번 밀리게 되면 부산까지 밀린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발언은 특정한 상대를 적으로 의식했을 때나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세훈의 적은 과연 누구였단 말인가?
오 시장은 작년 11월 3일 한나라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 첫 참석한 자리에서 야당의 '보편적 복지'보다 '자립형 복지'가 대한민국에 진정 필요한 일이라면서,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야당에서는 무상급식 등 보편적 복지를 화두로 공세를 펴고 있다. 하지만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이 지향해야 하는 바는 분명하다. 그것은 서울시가 지난 4년 동안 마련한 자립형 복지"라고 주장하며 당의 지지를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12월 20일, 박근혜 의원의 대선 출정식을 방불케 한 '박근혜복지공청회'가 열렸다.이 자리에는 안상수 원내대표 등 현역의원 70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루었다. 특히 박희태 국회의장은 "유력한 미래권력이신 박근혜…"라고 운운하는 축사를 했다.
박근혜 의원은 이 자리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지만 국민이 실제 느끼는 복지의 체감이 낮고 만족도도 높지 않다"며 '한국형 복지국가 건설'이 박근혜 캠프의 간판이 될 것이라는 점을 시사했다. 이날 한 친박계 의원은 "이번에 발의한 복지법 전면 개정안은 대선공약 만들기 일환으로 박 전 대표 생각을 실행에 옮기는 첫 단계"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오세훈은 '복지주의자'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자 그가 연일 '복지포퓰리즘'을 규탄하는 행보를 하고 있는 것이 박근혜 의원 견제용이라는 분석이 일각에서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친박 현기환 의원이 대신 나섰다. 그는 1월 11일 "오 시장이 정치공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손해가 될 것"이라며 "대화와 설득 없이 무상급식에 대한 주민투표를 실시하자는 것도 지나치다"고 경고하기에 이르렀다.
오세훈의 '말 바꾸기', 어떤 약속도 의미가 없어오세훈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한다면서 탄액안 서명 발의에 참여하지 않더니 이후 본회의 표결에 가서 찬성표를 던진 바 있다. '정치인 오세훈'이 유명해진 것은 2004년 1월 6일, "정치개혁과 한나라당의 공천혁명에 밑거름'이 되려 한다"며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부터였다.
이후 그는 서울시장 출마설이 나돌자 "(내가) 서울시장에 출마한다는 이야기는 엉터리입니다"라고 말하더니, 여론조사 결과가 좋게 나오자 "정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의 사회참여"라고 하면서 출마 의향을 내비치고는 이듬해 실제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그리고 2010년 재선 출마 때에는 시장직을 끝까지 수행한다는 약속을 하고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불과 10개월 후인 2011년 4월 미국을 방문한 그는 하버드대 강연 리셉션장에서 "우리나라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 있고 정치 환경은 내 뜻대로만 가는 게 아닌 만큼 (대선 출마라는) 큰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며 차기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비친다. 오 시장은 발언 직후 "공식 대선 출마 선언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소신을 밝혔을 뿐"이라며 부정하지 않았다.(<동아> 보도 참조) 그런데 이 자리에서도 오 시장은 "선거에 즈음해 나눠주기 공약을 남발하는 정치인을 유심히 지켜봐야 한다"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추가했다.
이런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정치인 오세훈의 경우, '출마한다' '안 한다' 식의 말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따라서 최근의 대선 불출마 발언에도 그다지 큰 무게를 부여할 수가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이번 서울시 주민투표를 진행하는 내내 차기대선 출마를 염두에 두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뜻밖에도 당 '밖'에서 나타난 우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