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두봉서강8경중의 하나로 풍광이 수려해 명나라 사신들의 필수 유람지였다. 병자호란때 조선 왕의 항복을 받아 콧대가 높아진 청나라 사신들은 잠두봉 아래 양화나루에서 뱃놀이를 즐기면서 ‘삼배탕’을 요구해 영접사를 곤혹스럽게 했다. 조선 후기 천주교 신자 처형 장소로 쓰여 현재는 절두산 성지가 되었다.
이정근
의금부도사 신선경이 이끄는 안평대군 호송행렬이 양화나루에 도착했다. 강바람이 쌀쌀하다. 하늘을 찌를듯한 권세도 때가 되면 세(勢)를 잃듯이 대지를 달구던 폭염도 바람 앞에 위세를 잃고 꼬리를 내렸다. 이우직이 먼저 거룻배에 올랐다. 뒤이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안평대군이 배에 올랐다. 위풍당당했던 위엄은 간데없고 참담한 모습이다
거룻배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상일은 알바 아니다'라고 무심히 서있던 소가 놀랐나?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던 소가 큰 눈을 부릅뜨고 움직였다. 함거를 끌고 갈 황소다. 덩달아 거룻배가 기우뚱했다. 사람들도 하나같이 기겁했다. 놀란 소가 안평을 쳐다보았다. 산발한 모양새가 시선을 혼란하게 했는지 쳐다보고 또 쳐다보았다.
배가 강심에 이르자 누에의 머리를 닮았다하여 잠두봉이라는 이름을 얻은 봉우리가 눈에 들어왔다. 잠두봉은 서강8경 중의 으뜸이다. 때문에 조선을 찾은 명나라 사신들의 유흥 명소였다. 강 건너 마주보이는 선유도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쪽진 여인네의 뒷머리 같은 선유봉은 암봉이고 우직하게 생긴 잠두봉은 숫봉이기 때문에 궁합이 맞는다는 것이다.
잠두봉과 선유봉 사이에서 벌어지는 선상 삼배탕, 한강의 명물이었다조선에 나온 중국 사신들은 선유도 뱃놀이를 게걸스럽게 탐했다. 더구나 '조선에 나가 뱃놀이 하면서 '삼배탕'을 식(食)하지 않은 사람은 조선에 다녀왔다 말하지 말라'는 말이 중국 관리들의 입에 회자(膾炙)되면서 사신을 영접하는 조선 관리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사람들은 광진에서 군자감이 있는 용산강 까지를 한강. 용산강에서 삼개나루 지나고 안평대군 정자를 지나 양화나루 까지를 서강. 그 이서(以西)는 임진강과 예성강이 합류하고 개경 상인들이 터줏대감 노릇을 한다고 해서 경강이라 불렀다.
눈을 왼쪽으로 돌리니 효령대군의 별장 희우정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버지 세종의 부름을 받고 형 수양과 함께 잔치에 참석했던 일이 어제 일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때처럼 아우 금성, 형님 수양과 함께 형제간에 우애 있게 살 수는 없을까?"부질없는 상념에 잠겨 있을 때 이우직이 오라에 묶인 아버지를 바라보며 탄식했다.
"그러니까 제가 먼저 치자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부끄럽다. 시기를 놓친 것이 한스럽다."
안평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배가 강심을 벗어나자 삼각산이 시야에 들어왔다. 백운대와 인수봉 만경대가 어우러져 영험하게 보이는 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