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만해서는 다른 사람과 함께 거울을 보지 않는 ‘시커먼스’는 외출 시 옷을 고를 때 왜 이렇게도 안 받는 색이 많은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김학용
까마귀도 울고 갈 피부색이다 보니 웬만큼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뽀샤시'한 작품사진을 기대하기란 하늘의 별따기. 오죽하면 카메라의 강제 발광모드로 상시 전환하여 플래시까지 펑펑 터트려야만 할까?
태어나면서부터 유난히 검은 피부를 가지고 태어난 둘째는 어릴 적부터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초등학교 6학년인 형이 평범한 피부를 가진 반면, 유난히도 까무잡잡한 피부를 지닌 둘째는 지극히 동양적인 형의 피부색이 그렇게도 부러울 수가 없었다.
얼마 전 피서를 겸한 외가의 가족모임이 잘 끝나는가 싶더니 결국 막판에 대형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둘째의 콤플렉스를 잘 아는 내가 미리 신경을 썼어야 하는데 미처 손을 쓰기도 전에 삽시간에 일이 터지고 말았다.
오랜만에 만난 이모부는 "오늘 보니 너 피부 진짜 새까맣네? 하하하! 너, 밭 매다 왔냐?"고 놀려대고 말았다. 걱정인지 비아냥거림인지, 눈치 없는 일행들은 그동안 참았던 속내를 거침없이 터뜨리며 박장대소하고 말았다.
그랬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3학년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엔그 표현이 너무 가혹했다. 친척들의 놀림에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던 둘째 아들은 화장실로 뛰어가 서러운 울음을 참지 못하고 눈시울이 벌겋게 달아올라야 했다.
거무튀튀한 피부가 매력적인 아들의 별명은 역시 '시커먼스'다. 하지만 은근히 외모에 신경을 쓰며 요즘 부쩍 멋을 부리기 시작한 아들은 미용실 가서 머리를 잘라도 무조건 자기방식대로 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얼굴선을 갸름하고 날렵하게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며 비대칭 머리를 했다가 이것도 싫증이 난다며 부분 염색까지 훌륭하게 소화해 낸다. 그렇게 얼짱 각도까지 예민하게 신경 쓰는 멋쟁이 아들의 피부색으로 인한 콤플렉스는 오죽하겠는가?
절대로 다른 사람과 함께 거울을 보지 않는 '시커먼스'는 오늘도 뽀얀 피부의 외모를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해보지만 허사다. 외출 시 옷을 고를 때면 왜 이렇게도 안 받는 색이 많은지…. 인터넷 검색결과에서 찾아낸 방법대로 쌀뜨물로 세수도 해보고 엄마가 쓰는 미백크림까지 매일 발라 보지만 별 효과가 없는 것 같다.
그나마 '이효리'라는 '섹시 아이콘' 덕에 조금 수그러들었지만, '검은 피부가 건강하다'는 아빠의 감언이설에 결코 속지 않는다. 물론 '검은 피부의 남자가 남자답고 섹시하다'는 말도 믿지 않기는 마찬가지. 혹시나 해서 "미국 대통령도 검은 피부잖아?" 라고 말하니 돌아온 답변이 걸작이다.
"내가 대통령이야? 오바마는 이제 대통령이니까 피부가 검든 아무런 상관이 없거든? 난 대통령이 아니라고, 그냥 시골 아이라구요…. 아빠, 피부가 흰 사람과 나란히 서 있으면 쪽팔린 건 당연한 거 아니에요? 무조건 피부 흰 사람이 승리하는 거잖아요. 피부가 하얀 사람들은 아무리 못생겨도 환한 느낌에 어딘지 멋져 보이지만, 피부가 검으면 왠지 모르게 부족해 보인단 말이죠. 왠지 없어 보이고 촌스러워 보여요. 다들 말로는 검은 피부가 섹시하고 매력적이라고 해놓고선, 정작 자기들은 피부가 검게 변하는 건 싫어하잖아요. 여름 되면 선크림 바르고 난리치면서…. 그러니까 검은 피부가 섹시하고 매력적이란 말, 새카맣게 태우고 싶다는 말,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지 뭐야."이미 어린 나이에 인생을 터득한 아들의 마지막 말이 짠하다. 뽀얀 피부는 바라지도 않고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적당히 가무잡잡하기만 해도 좋겠다는 아들의 이유 있는(?) 항변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