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하루 앞둔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을 방문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시장 상인으로부터 김밥을 받아 먹고 있다.
유성호
오세훈은 21일 무상급식 투표에 시장직을 걸겠다는 기자회견을 하면서 다섯 번이나 울었다(어떤 보수신문은 여섯 번이라고 하고 어떤 진보신문은 네 번이라고 해서 그 중간인 다섯 번으로 했다. 어차피 그의 별칭도 '5세 훈이'니까). 마지막에는 무릎까지 꿇었다. 100년만의 집중호우와 산사태로 우면산 기슭에서만 18명의 시민이 죽었을 때도 울지 않던 그였다. 아니 오히려 이날을 위해 눈물을 아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날도 울고 이날도 울면 눈물의 값어치가 떨어질 테니까.
오세훈은 변호사 개업 이후, 방송 시사프로그램 진행으로 대중에 얼굴을 알리는 한편으로 환경운동연합 상임집행위원장으로서 시민사회에 '클린 이미지'를 쌓아왔다. 그런 이미지 덕분에 2000년 16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 공천으로 서울 강남구에 출마해 정계 입문했다. 시민환경단체의 기대에 걸맞게 의정활동도 모범적이었다. 한나라당 소장파 모임인 '미래연대'의 공동대표로 정치개혁에도 앞장섰다.
오세훈은 17대 국회의원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불출마를 '무기'로 나중에 '오세훈법'으로 불린 정치개혁 관련 3법(정당법, 공직선거법, 정치자금법) 개정을 주도했다. 2보 전진(서울시장 출마)을 위한 1보 후퇴(의원 불출마)가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그러나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서울시장 출마가능성을 부인했다. 심지어 "(불출마 선언으로) 호감을 얻었지만 이를 밑천으로 정치적 도약을 노릴 만큼 미련치 않다"고도 했고, "서울시장은 경륜이 필요한데 나는 충분치 않다"고까지 했었다.
그러나 강금실 후보의 유력한 대항마로 거론되자 그는 언제 그런 말을 했냐는 듯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출마해 240만 9736표를 얻어 같은 당 김문수 경기지사당선자(218만1677표)를 누르고 전국 최다 득표의 영예까지 안았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서울 신촌 유세중 괴한으로부터 당한 '면도칼 테러' 덕분(?)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잘나서 그 많은 표를 얻은 줄 알았다.
그래서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는 주민투표 강행을 '승부사적 기질'로 풀이한다. 고 박사에 따르면, 오세훈은 "자기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가보는 승부사적 기질이 아주 많은 사람"이다. 그런데 2006년에 전국 최다 득표의 영예를 누렸던 그가 4년 뒤에 간신히 당선되어 여소야대에 포위당하자 정면돌파의 수단으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택했다는 것이다.
대권 야심 실현하려는 '오세훈의 전투적 프레임 전략'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상급식 논란의 진원지는 서울시가 아니라 경기도라는 사실이다. 김상곤 교육감은 지난 2009년 보궐선거에서 무상급식을 내걸고 경기도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지배하는 경기도의회는 그가 제출한 초등학교 무상급식예산안을 전액 삭감해 버렸고, 김문수 지사도 일률적 무상급식을 반대했다. 그러나 2010년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의회는 여소야대가 되었다. 오세훈과 달리 김문수는 '무상급식' 문제를 '친환경급식 지원'으로 풀어버렸다. 서울시와 상황(여소야대)은 같은데 단체장의 해결 방식은 달랐다.
그래서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는 미국의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미국 진보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에서 역설한 '프레임' 개념을 빌려서 무상급식 주민투표 강행을 대권 야심을 실현하기 위한 '오세훈의 전투적 프레임 전략'으로 해석한다.
"오세훈에겐 이슈의 정당성 문제를 떠나 정치 전략·전술적 측면에서도 나름의 노림수가 있다. 대권에 대한 야심이다. 그 야심을 위해선 큰 위험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자신의 확고한 브랜드를 갖기 위해 확실하게 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다…(중략)…민주당의 프레임을 단순히 부정하는 것을 넘어서 '오세훈표 프레임'을 만들어내기 위해선 무리를 하는 것도 불사해야 하리라. 오세훈은 그 목적을 위해 박근혜에게 딴죽을 걸고 이명박도 넘어서고자 한다."(강준만, <강남좌파>, 363~365쪽)그러나 이게 어디 튀어서 될 일인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강준만의 논점을 빌리면, 그는 2004년 1월 5일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정치가 아니라 전쟁을 하듯 늘 갈등만 했던 게 부끄럽다"고 했다. 그런 그는 의원직(불출마)을 버려서 2년 뒤에 시장직을 얻었다.
이제 그는 시장직을 버려서 '박근혜 이후'를 얻으려 한다. 그가 밥그릇을 빼앗으려는 초등학생 눈에도 보이는 뻔한 수다. 그런데 대권 야심에 어두워 침침한 눈에는 다른 게 뵐 리 없는 것일까?
그는 지금 갈등을 유발하는 주민투표를 전쟁하듯 강행하면서 "의회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시장이란 정치적 오명을 남기더라도 절대 타협하지 않겠다"는 막말을 서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정치를 승부게임으로만 간주하는 정치인에게 한 번 속지 두 번 속을 어리석은 국민은 그가 생각하는 만큼 많지 않다.
덧붙이는 글 | '무상급식 주민투표 D-1. 좋은 싫든 모두가 뛰어든 오세훈 전쟁'. 23일 <중앙일보> 1면의 사이드 톱기사 제목이다. 그런데 그 옆에 큼지막하게 실린 '카다피 운명은'이라는 제목의 머리기사가 시장직을 건 그의 운명과 절묘하게 오버랩되는 건 나만의 상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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