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인 시논과 사장과의 대화를 통해 우리 사회에 진정한 소통의 의미를 묻고 있는 연극 <목소리>
박주희
시논은 일하다가 손가락이 세 개가 절단된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다. 시논은 산재처리를 하겠다고 하지만 사장은 수주에 차질이 생길까봐 이를 만류하려 한다. 두 사람은 마주 앉지만 실상 대화다운 대화는 이뤄지지 않는다. 대화는 뚝뚝 끊기기 일쑤이고 사장은 알아듣지 못할 말을 잔뜩 내뱉고는 "알아들어?"라고 묻는다. 사장은 시논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를 흡수하지 않는다. 그에게 시논은 입 없는 청자일 뿐인 것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사장은 힌두교인 시논에게 족발과 소주를 권하고 "못 사는 나라가 뭘 그렇게 가려 먹냐"며
무지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연극은 소위 돈 있는 나라의 종교와 언어는 선망의 시선으로, 비교적 가난한 나라의 종교와 언어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한국 사회의 모순된 태도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한때 이라크에서 지뢰파편까지 맞은 한국의 이주노동자였던 사장이 왜 이렇게 변한 것일까.
팍팍한 세상, 고립된 사장의 이야기 영세한 사업체의 경우 미등록 외국인이 추방되고 나면 또 다른 사람을 구하기가 힘든 실정이다. 대부분이 3D 업종인데다가 많은 월급을 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극 중 사장도 시논이 추방되면 당장 어려워질 상황이다. 잘 풀리지 않는 사업, 나쁜 사람이라고 낙인찍는 사람들 속에서 '내 편'은 없다는 외로움이 사장을 고립시키고 있었다. 각박한 본인의 생활이 예전의 자신 모습과 닮은 시논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들들 볶는 이유로 작용했던 것이다. 그런 사장에게서 우리 아버지, 삼촌의 외로움을 발견한 것만 같아 가슴이 시렸다.
연극에서 한때 시논처럼 이주 노동자였던 사장은 시논 손가락 두 개를 늦게 찾은 게 미안해 잠 못 이루고, 시논은 "나도 너무 힘들다"며 울다 자신의 다리에 기대 잠든 사장을 물끄러미 응시한다. 연극은 이런 이야기 등을 통해 관객이 스스로 소통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끔 열린 결말을 제시한다.
상대의 마음을 듣고 싶다면 자신을 내보여야 한다. 힘들고 버겁다는 이야기가, 말이 통하지 않는 시논에게도 통한 건 바로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간 소통을 단절시키고 나쁜 사람으로 인식돼 온 사장의 이야기도 들려주며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해하라는 메시지를 준 연극 <목소리>. 우리가 통하고 있다고 생각한 이들과 정말 제대로 된 '소통'을 하고 있는 건지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된다. 같은 맥락에서 내 또래인 선화의 이야기는 이해할 수 있을까, <분홍박각시나방> 속으로 들어가보자.
# <분홍박각시나방> "레즈비언이어도 난 엄마의 딸"나의 여고 시절, 한쪽 머리를 얼굴을 뒤덮을 만큼 길러 남자 아이돌 분위기를 물씬 풍기던 여자아이가 있었다. 사복을 입을 때면 흰 남방에 까만 넥타이를 즐겨 착용했다. 친구들에게도 당당히 여자를 좋아하노라고 고백했다. 레즈비언이어도 성격만 좋음 됐다는 쿨한 친구들도 많았지만 주변 친구들은 그 아이하면 '레즈'라는 단어부터 떠올렸다.
튀는 아이는 흘기고 보는 여고생들이 레즈비언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당시 레즈비언은 우리와는 다른 유전자를 가진 집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요즘도 그 아이를 길거리에서 마주친 친구들은 '아직도 그러고 다닌다'며 '대단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 모습을 일부러 고수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살아가는 게 그 아이의 정체성인데 우린 여전히 여고 시절 사고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