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0일 오후 3시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덕이동 이마트 탄현점 앞에서 고 황승원군 등 사고 희생자 유가족들과 서울시립대 학생들이 신세계 이마트쪽의 사과와 책임을 요구하는 기자 회견을 열고 있다.
김시연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어른들은 말한다. 또 "어른들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고도 했다. 젊어서 하는 고생, 그 고생이 젊은 날 한번 해봐야할 경험쯤을 말한다면 틀리지 않다. 노동의 가치와 돈의 소중함을 알기 위한 고생은 정말 '한번은' 해볼 법하다.
하지만 그것이 '생존'과 직결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반값이 된다던 등록금은 고지서가 무색해할 정도로 내리지 않았고, 생활비도 만만치 않다. 청년들은 젊은 날의 경험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사서 하는 고생' 그 이상을 경험하고 있다. 누구는 등록금을 벌기 위해, 누구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노동의 현장으로 나간다.
결국 그 고생을 사서 하다 사람이 죽었다. 지난 7월 2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이마트 탄현점 지하 1층 기계실에서 동료 3명과 함께 질식사한 서울시립대 학생 황승원(22)씨는 등록금을 벌기 위해 일하던 청년이었다. 그는 냉동기 보수작업을 하다 새어나온 프레온가스에 질식해 사망했다.
그 안타까운 죽음 앞에, 그곳에 산소호흡기 한 대만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산소호흡기 비치문제를 따지기 전에 작업을 하기 전 공기상태가 어떠한지 측정하고 평가했다면, 혹은 비상시 취해야 할 응급조치 등에 대한 사전교육이 있었다면.
그저 잠깐 용돈이나 벌려고 하다마는 '알바'이기 때문에, '청년노동자'들의 노동은 '노동이 아닌 것'으로 쉽게 왜곡된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다치지 않고, 죽지 않고 일할 권리가 있다. 모두 휴가를 떠나는 여름방학에도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힘들게 일하다 다친 대학생들을 만나봤다.
치료비도 작업복도 자기 돈으로..."다시는 이런 일 안 할 것"전북대학교 학생 이용규(20, 남)씨는 올 여름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하수구 청소 알바를 했다. 색다른 일을 경험도 해보고 싶었고 돈도 벌어야 해서 지인의 소개로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하수구를 청소하기 위해 맨홀 뚜껑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다 깊은 맨홀에 빠졌다. 다행히 많이 다치진 않았다. 하루 쉬고 다시 일을 나갔다. 그 뒤로도 일을 하며 조금씩 다쳤다.
"약국에서 직접 약을 사 발랐죠. 물론 제 돈으로요. 같이 일하던 누구는 맨홀 뚜껑을 열다가 발이 찍혀서 발가락이 으스러지기도 했거든요. 그런 사람들도 다 제 돈으로 병원을 갔어요. 제 경우는 나은 편이었어요. "매일 다치던 이씨는 제 스스로 몸을 보호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안전장비 같은 건 없었어요. 기껏해야 안전화 정도? 발등 찍히지 말라고 줬어요. 하지만 그것 가지고는 부족했어요. 그래서 제 돈으로 작업복을 샀어요. 다리 안 까지려고요. 안전교육이요? 그런 게 어딨어요. 조금 큰 업체에서 한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제가 일하던 곳은 조그마한 곳이었거든요. 그냥 '일하면서 배워라'였어요."노동건강권에 대해 아는지 물었다. '그게 뭐냐'고 묻는 이씨에게 기자가 "한 달에 60시간 일할 경우 4대 보험 가입은 필수…" 하고 설명을 시작하자,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답한다.
"(4대 보험은) 당연히 안 되죠. 저는 지인 통해서 간 경우라 계약서도 없었어요. 아마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그냥 믿고 한다는 생각이었죠. 사실 믿는다기보단 그냥 잘 몰라서였겠지만요."이씨는 다시는 하수구 청소 알바를 하지 않을 생각이란다. 자기도 직접 다쳤고, 주변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자주 다치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많았다.
"정말로 위험한 일이구나 생각했어요. '나중에 사회에 나와서 절대 이런 일 안 해야겠다. 이렇게 힘들고 위험한 일 안 하고 편한 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그러나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 한다. 이씨가 이 일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누군가는 이씨와 똑같이 매일 조금씩 다리를 까이며, 작업복을 직접 사고, 직접 약을 사서 연고를 발라야할 것이다. 내 일이 아니라고 해서 외면할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