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다다오가 쓴 <안도다다오의 도시방황> 겉 표지
오픈하우스
안도 다다오는 일본 오사카 출신의 유명한 건축가입니다. 그는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해 세계적인 건축가가 된 보기 드문 사람입니다. <안도 다다오의 도시방황>은 1965년부터 1992년까지 안도 다다오의 여행 기억을 기록으로 묶은 책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10대 후반에서 오늘까지 '여행'을 통해 건축을 배우고 고민하고 만들어온 내 여행의 기억을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엮은 글"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는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다고 이야기합니다.
"일상을 벗어나 상이한 풍경, 상이한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과 그 문화와 접촉하는 것....... 일상의 시간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미지의 장소에 홀몸으로 다다랐을 때 인간은 스스로와 대화를 나누고 그때까지 보지 못했던 것들에 눈길을 던지게 된다."그는 구체적인 장소의 이동뿐만 아니라 사색의 여행에서도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색의 여행을 통해서도 마음이 격렬하게 흔들리고 사고를 자유롭게 해방 시킬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는 여행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건축가로서의 자신이 만들어졌다고 말합니다.
10대 후반에 시작한 그의 장소 이동 여행은 유럽에서 시작되어 아시아와 유럽 그리고 세게 곳곳으로 이어집니다. 이 책에는 여행에 대한 그의 간절함을 엿볼 수 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젊은 시절 그는 복서로 데뷔, 프로 테스트에 합격해 방콕으로 해외원정을 다녀옵니다. 그가 권투를 시작한 것은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던 시절에 초빙을 받아 해외로 나가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65년에 내가 처음으로 유럽에 가고자 했을 당시 건축을 배운다는 말은 서양 건축을 배운다는 뜻"이었다고 합니다. 그가 파리를 동경하기 시작한 것은 23살이던 1965년부터였습니다.
파리를 동경한 것은 르 코르뷔지에라는 건축가의 영향을 받은 때문인데 자신과 마찬가지로 건축과 관련한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아 그에게 더 끌렸는지도 모릅니다. 1964년 일본은 처음으로 일반 여행자의 해외여행을 허용했는데, 그는 1965년 4월말 여행을 떠났습니다. 1달러가 60엔이었던 시절로 유럽까지의 비행 삯이 약 7만 엔이었답니다.
"아르바이트로 모은 60만 엔 정도의 현금을 지니고 요코하마에서 배를 타고 나훗카로 건너간 후 시베리아 철도를 타고 모스크바를 지나, 북구에서 파리로 들어가는 코스를 밟았다. 파리에 도착한 건 분명 9월 말이었다."
세상에. 오사카에서 파리까지 무려 5개월이 걸렸습니다. 그는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두세 시간 기차를 타고 르 코르뷔지에의 건물을 보러 갑니다. 이곳에서 그는 처음으로 건축에 생명을 불어넣은 강렬한 빛을 체험합니다.
1965년, 오사카에서 파리까지 4개월이 걸렸다바로셀로나로 이어진 여행에서 그는 안토니오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만납니다. 그는 이곳에서 중앙에 맞선 카탈루냐의 역사, 지중해 특유의 색채, 거대한 자연 등 카탈루냐 지방의 독특한 풍토 위에 만들어진 가우디의 건축을 만나게 됩니다.
"한 지역의 풍토는 인간의 체내에서 피처럼 흘러 세포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면서 기억을 이어나간다. 가우디의 작업물을 보면 풍토야말로 창조성이 잠재해 있는 곳임을 새삼 깨닫는다."건축이 상품화되면 인간은 풍토와 멀어지고 인간정신의 붕괴와 직결된다는 것이 안도 다다오의 생각입니다.
그는 유럽에서 일본으로 돌아올 때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오는 화객선을 이용합니다. 마르세이유에서 출발하는 화객선은 상아 해안-희망봉-마다가스카르-봄베이-실론-싱가포르-홍콩-고베-요코하마에 이르는 경로였지요. 8만 엔을 내고 75일쯤 걸리는 여행이었습니다.
봄베이에 도착하였을 때는 여비가 떨어져 손목시계, 카메라, 볼펜 등 팔 만한 물건을 모두 팔아 인도를 여행합니다. 봄베이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사막마을 아마다바드를 다녀왔다고 하는데, 이때의 체험이 20년간 숙성, 발효되어 자신의 나카노시마 프로젝트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젊은 시절 안도 다다오는 일을 하고 받은 돈 대부분을 여행에 썼습니다. 설령 통장에 한 푼도 남지 않더라도 내 안에 뭔가 남으면 그만이라는 마음이었다고 합니다. 27살이던 1968년에는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제작 연대에 따라 찾아다니는 여행을 떠납니다.
그는 미켈란젤로의 창작과정을 따라 로마와 피렌체를 몇 차례나 오갑니다. 보통 사람의 눈으로 보면 바보스러운 여정입니다만, 시대의 흐름을 체현해 보고 싶다는 바람과 사회적 정황의 변화에 따른 작가의 심적 변화를 헤아려 보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안도 다다오는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말을 인용하여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영감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내게는 친구가 많다. 플라톤도, 네로 황제도 모두 친구다. 어떤 역사적 인물일지라도 대화를 자꾸 하다보면 친구가 된다."그는 여행의 성공과 실패는 이런 가공의 대화가 얼마나 가능하냐에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결코 말하지 않는 존재와의 커뮤니케이션은 현실의 대화를 뛰어넘는 깊이가 있으며 그것은 결국 자신과의 대화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