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과 현실, 그 가파른 틈새를 클릭하다

[서평] 작가 고예나가 쓴 장편소설 <클릭 미>... 희망없는 젊은 세대 다뤄

등록 2011.08.16 17:26수정 2011.08.16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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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고예나 작가 고예나가 세 번째 장편소설 <클릭 미>(은행나무)를 펴냈다.
작가 고예나작가 고예나가 세 번째 장편소설 <클릭 미>(은행나무)를 펴냈다. 고예나
"그날 옷을 100만 원어치는 샀어. 뭐, 백화점 옷이 비싸니까 몇 벌 안 되긴 하지만. 백도 선물하겠다는 거 내가 다음에 사달라고 했어. 나 양심 있지 않냐?"
"야,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 하지 마. 니가 뭐가 양심이 있는 거냐?"
성아가 계란으로 머리를 치며 말했다.
"난 된장녀하고는 달라. 사달라고 해서 사준 게 아니라 우연히 구경하다가 사준 거란 말이야." -책 속에서

전자책이 클릭 한 번으로 종이책 옆구리를 포옥 찔러 마구 비틀거리게 만들고 있는 이 시대. '디지털'로 불리는 온라인 세상과 '아날로그'라 불리는 오프라인 세상이 눈을 치켜뜨고 서로 뿌리를 뻗고 있는 사회가 요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다. 이러한 세상에서 소위 인터넷 세대라 불리는 젊은이들 몸과 마음에는 무엇이 꿈틀거리며 자라고 있을까.    


이들은 돈에 대해, 상품에 대해, 직업에 대해, 우정에 대해, 사랑에 대해, 섹스 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며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온라인 세상에서는 아이들을 족집게처럼 잘 가르치는 논술 선생님이지만 오프라인 세상에서는 키스방에서 일하고 있는 여자, 온라인 세상에서는 채팅으로 멋들어진 남자들과 많이 사귀지만 오프라인 세상에서는 남자 한 명조차 만나지 못하는 못생긴 뚱녀···.

가상(꿈)과 현실, 그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벽은 무엇일까. 가상을 가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현실에서 이루지 못하는 그 어떤 것들을 가상세계에서라도 이루고 싶은 인터넷 세대들. 이들은 왜 가상세계에 그토록 매달리는 것일까.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꿈을 현실에서는 도저히 이루지 못 하기 때문일까.       

'클릭시대' 살아가는 인터넷 세대들 사랑 이야기

"인간의 이중성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인간의 이중성을 들여다볼 때, 나는 판도라 상자를 열었을 때처럼 가슴이 뛴다... 진실이란 알면 알수록 아픈 것이어서 좀 외면하고 싶었다. 남들이 '노'라고 해도 나만은 '예스'라고 할 수 있는 허위의 세계를 갖는 순간, 나는 상처로부터 치유되어 한껏 상상의 날개를 펼 수 있었다."-작가의 말

2008년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작가 고예나가 세 번째 장편소설 <클릭 미>(은행나무)를 펴냈다. 이 책은 <클릭 미>(작품 속 랜덤 채팅 사이트 이름)라는 제목에서 얼른 떠올릴 수 있듯이 클릭 한 번이면 내가 바라는 모든 정보를 쉬이 찾을 수 있고, 나아가 사랑과 섹스조차도 검색을 통해 찾는, 그야말로 '클릭시대'를 살아가는 인터넷 세대들 세상살이다.


이 책은 모두 11꼭지에 인터넷 세대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오가며 느끼는 희망과 절망, 기쁨과 슬픔, 웃음과 눈물 등이 얼룩져 있다. 한지현 편-남성 편력, 정연희(나) 편-이중생활, 배유리 편-너는 내 운명, 박성아 편-팜므파탈, 정연희(나) 편-애인이 되어 줄래?, 정연희(나) 편-나이롱 환자, 배유리 편-스마트남, 박성아 편-변태남, 정연희(나) 편-복수혈전, 한지현 편-오프라인 만남, 정연희(나) 편-사랑의 클릭이 그것.

이 소설에 좀 더 쉽게 다가서기 위해서는 작가 고예나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그 속내를 살짝 더듬을 필요가 있다. 스프링처럼 톡톡 튀는 작가 고예나 미니 홈피에 들어 있는 '내 소개'란 글을 간추려보자. 그는 "자기의 개성과 취미와 의지대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행복이고 사람은 오직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만 잘 할 수 있다는 말을 신봉한다"고 적고 있다. 


그는 "글 외에 다른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잘하지 못할 거면 손대지 말자는 주의"이며 "그냥 즐길 수 있는 취미 같은 건 없고, 굳이 꼽자면 독서"란다. 그가 "독서보다 더 오래 할 수 있는 건 글쓰기"이며 "글만이 내 존재 증명의 유일한 길"이어서 "글에게 내 인생의 팔 할을 빚지고 있"다고 여긴다. 재미난 것은 톡톡 튀는 인터넷 세대답지 않게 "핸드폰은 몇 년째 같은 기종을 사용한다 이제 정들어서 바꿀 수 없다"고 쓴 글이다. 

고예나 장편소설 <클릭 미> 이 책은 <클릭 미>(작품 속 랜덤 채팅 사이트 이름)라는 제목에서 얼른 떠올릴 수 있듯이 클릭 한 번이면 내가 바라는 모든 정보를 쉬이 찾을 수 있고, 나아가 사랑과 섹스조차도 검색을 통해 찾는, 그야말로 ‘클릭시대’를 살아가는 인터넷 세대들 세상살이다
고예나 장편소설 <클릭 미>이 책은 <클릭 미>(작품 속 랜덤 채팅 사이트 이름)라는 제목에서 얼른 떠올릴 수 있듯이 클릭 한 번이면 내가 바라는 모든 정보를 쉬이 찾을 수 있고, 나아가 사랑과 섹스조차도 검색을 통해 찾는, 그야말로 ‘클릭시대’를 살아가는 인터넷 세대들 세상살이다 은행나무
"학자금 대출을 받은 나는 졸업을 하고 나서 대출금을 갚아야 했다. 하지만 대출금을 갚기는커녕 매달 방세 내기에도 급급했다. 수도권의 단칸방은 고시원처럼 작으면서 월세는 턱없이 비쌌다. 보증금이 적을수록 더 그랬다. 나는 언젠가부터 투잡을 뛰기 시작했다. 700만 원. 지난달 투잡으로 번 돈이었다. 인터넷 논술 학원에선 100만 원을 벌고, 밤에 하는 일터에선 600만 원을 벌었다." -책 속에서

이 장편소설은 '한지현 편-남성 편력'을 클릭하면서 문고리가 당겨진다. 졸업을 한 나(정연희)는 대출금을 갚기 위해 투잡을 뛴다. 낮에는 인터넷 논술학원에서 일하며 100만 원을 벌고 밤에는 키스방에서 일하며 600만 원을 번다. 이때 운동 메이트로 만난 임용고시 준비생 한지현은 채팅에 빠져 산다.

지현 채팅남은 인턴, 최연소 국회의원 당선자, 삼성 연구원 등이다. 뚱뚱하고 못 생긴 지현은 그런 채팅남들이 사진을 보내라고 하자 내(정연) 사진을 보낸다.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유리는 운명을 믿는 여자다. 지현은 나(정연)에게 전화를 걸어 "채팅을 통해 운명남을 만났다"고 으시댄다. 그는 온라인을 떠나 오프라인에서 그 남자를 만나기로 했지만 후줄근한 남자가 나타나자 제발 저 남자가 아니기를 빈다.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박성아는 너무나 조용하고 삭막해 그 일을 견디지 못하고 채팅을 통해 섹스 파트너를 찾아 나선다. 성아는 30대 미혼남과 40대 이혼남 등을 섹스 파트너로 삼아 노닥거리다가 미혼남이 자신에게 사랑을 느끼자 미련 없이 그를 떠난다. 그는 그 뒤 랜덤 채팅을 통해 다른 남자를 만난다.

나(정연)는 어느 날 단골손님이 준 팁으로 강원도 바닷가로 여행을 떠난다. 나는 그 여행에서 등뼈가 부러지고 소장이 찢어지는 큰 사고를 당한다. "나는 졸지에 전치 10주 진단을 받아 입원하게 되고" 다니던 직장에서 잘린다. 나는 퇴원을 한 뒤 여러 회사에 면접을 보러 다니지만 잇따라 떨어진다.

유리는 그 사이 운명남을 만난다. 유리가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다 만난 그 운명남은 "폰으로 치자면 스마트남에 아우디를 몰고 다니는 훈남"이다. 유리는 이번에야말로 진짜 운명남이라고 믿는다. 성아는 30대 미혼남과 헤어진 뒤 다른 채팅방을 통해 변태남을 만난다. 호텔에서 만난 변태남은 준비해 온 스타킹을 성아에게 신게 한 뒤, 칫솔로 위협하고 스타킹을 찢으며 강간범 흉내를 내는 섹스를 즐기는데......

작가 고예나는 이 소설에서 주인공들을 마치 살가운 벗들 속내를 발가벗겨 다시 글이란 크레파스로 더 진하게 색칠하듯 그린다. 그는 꿈과 현실이 뒤얽히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낮과 밤이 다른 이중생활, 가짜 사랑과 참 사랑 그 사이를 가로막는 어쩔 수 없는 벽 등을 통해 우리 시대 아픈 속내를 마구 후벼판다. 그가 찾는 이 시대 참 희망과 참 사랑은 과연 어디 있을까. 

희망과 절망 그 언저리 맴도는 우리 시대 슬픈 자화상

"편의점복을 입고 바코드를 찍고 있는 남자를 흘긋 살핀다. 나는 잠시 숨을 멈춘다. 어디서 본 얼굴이다. 낯이 익다. 나는 과거로 타임머신을 돌린다. 아, 그 사람이다. 0081. 강남에 있는 월세 190만 원짜리 오피스텔에 살고, 뚜껑이 있는 비엠더블유를 몰고 다닌다는 그가 지금 내 앞에서 바코드를 찍고 있다. 서른 줄에 접어든 그가 정직원이 아닌 알바생으로서 본분을 다하고 있다."

작가 김별아는 <클릭 미>에 대해 "클릭! 클릭! 마우스 단추를 누르는 소리가 참다못해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 같다"고 적는다. 그는 "고예나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전(前) 세대와 다른 점은 그들이 나쁘면서 아프다는 것"이라며 "그들은 항상 돈이 없거나 없을까 봐 걱정한다. 사랑과 섹스 사이의 가파른 크레바스(crevasse)에 빠진 채 사랑을 흉내 내고 신음소리를 연기한다. 이것이 바로 희망 없는 시대를 관통하는 새롭고도 슬픈 소설"이라고 썼다.

작가 박성원은 "광속으로 전송되는 이 시대는 그야말로 클릭의 시대다. 초당 800메가바이트의 속도로 다운받으며 수백만 명이 동시에 접속한다"라며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젊은이들은 행복한가? 모든 문제들이 클릭 한 번으로 거짓말처럼 씻겨 갈 수 있을까? <클릭 미>는 이 같은 물음에 대한 청춘의 지침서"라고 되짚었다.

작가 고예나 세 번째 장편소설 <클릭 미>는 말 그대로 인터넷 세대들이 클릭을 하는 순간 사이버 세계로 들어가 그들 생각을 맘껏 펼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희망 없는 희망'을 마구 꼬집고 거세게 할퀸다. 이 소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꿈(가상)과 현실 그 틈새에서 살아가는 클릭 세대들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희망과 절망 그 언저리를 맴도는 우리 시대 슬픈 자화상이다.          

작가 고예나는 1984년 부산에서 태어나 1년에 걸친 직장생활을 접고 고시원에 들어가 3개월 만에 쓴 장편소설 <마이 짝퉁 라이프>로 2008년 '제32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2년 뒤 우리나라에는 잘 쓰지 않던 소재 '자매'를 내세워 온라인 서점 인터파크에 연재한 소설 <우리 제발 헤어질래?>를 펴냈다.

클릭 미

고예나 지음,
은행나무, 2011


#고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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