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현지시각) 저녁 미국 뉴저지주 팰리세이즈파크 타운홀 내 법정에서는 고등학교 교내 식당에서 타민족 학생과 싸움을 벌였다가 상대방 학생측으로부터 고소를 당한 안아무개(19)군에 대한 형사재판이 열렸다. 이날 200여명의 한인들은 공정한 재판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참석했지만, 판사가 재판을 시작하면서 피켓을 밖으로 내보내도록 지시했다.
최경준
3년 전 이혼 한 어머니를 따라 미국에 온 안아무개(19)군은 평생 '단순 폭행'이라는 전과 기록을 주홍글씨처럼 새기고 살아야 할지 모른다. 뉴저지주 팰리세이즈파크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안군은 이민 초기 언어의 어려움 때문에 애를 먹었지만, 지금은 중상위권까지 성적을 올렸다. "아직 구체적인 진로를 정하지는 않았지만, 미국에서 성공하고 싶다"는 안군, 하지만 영주권·시민권을 취득할 때도, 공공기관에 취업을 하려고 할 때도 그의 전과 기록은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경제적인 문제도 안군을 심각하게 압박하고 있다. 어머니가 재혼 한 뒤 새아버지와 다툼 끝에 집을 나와 지하 쪽방에서 혼자 살고 있는 안군은 오후 3시 학교 수업을 마치면 밤 11시까지 식품점에서 일을 한다. 주 40시간, 방학 땐 60시간을 일하지만 간신히 집세, 식비 등 생활비를 버는 수준이다. 그런 안군에게 법원이 1만3000달러가 넘는 큰돈을 지불하라고 판결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법원은 그에게 '단순 폭행'에 대한 유죄를 선고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악몽'은 지난해 10월 1일 학교 내 식당(카페테리아)에서 벌어진 단순한 주먹다짐에서 비롯됐다. 점심을 먹기 위해 줄을 서 있던 안군과 새치기를 하려던 타민족 학생 사이에 시비가 붙었고, 결국 한두 차례 주먹이 오갔다. 진상조사를 벌인 학교 측은 두 학생 모두에게 잘못이 있다며 5일 동안 정학 처분을 내렸고,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 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안군과 싸움을 한 상대방 학생의 부모가 안군을 형사고소하면서 이 사건은 학교를 벗어나 법정까지 오게 됐다.
"경찰의 일방적 조사, 불이익 받았지만 항변도 못 해""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면서 다툼도 있고, 다치면 치료도 해주고, 이런 게 다 교육의 일환이다. 그런데 어른들이 아이들을 법원까지 데려와서 상처를 주고 힘들게 해야 하느냐. 우리 사회가 이 정도의 관용도 가질 수 없나. (아이들의 사소한 다툼을) 법정 밖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법정에까지 가져와서 처벌을 하겠다는 것은 아이들을 오히려 잘못 가르치는 것이다."12일(현지 시각) 저녁 팰리세이즈파크 타운홀, 빈센트 휴즈 변호사는 쉴 새 없이 법정 안을 오가며 차분하면서도 강한 어조로 최후진술을 이어갔다. 특히 휴즈 변호사는 "만약 검사가 다른 케이스였다면(가해 학생이 한국인이 아니었다면-편집자 주) 이렇게까지 (소송을) 진행했을까"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학교의 교장 선에서 해결된 사건에 왜 경찰이 개입하는가? 학교에서는 이미 양쪽 학생이 모두 잘못했다고 해서 정학 처분을 내렸다. 그런데 지금 법정에서 한 아이는 더 많이 다쳤다는 이유로 희생자가 되어 있고, 다른 아이는 가해자가 되어서 앉아 있다. 가해자로 몰린 학생은 부모나 선생님 등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아직 영어가 서툰 이 학생은 혼자 두려움에 떨면서 경찰로부터 일방적인 조사를 받는 등 불이익을 당했지만 항변조차 할 수 없었다." 휴즈 변호사가 소속된 김&배 법무법인이 안군의 사연을 듣고 무료변론에 나선 것은 이미 사건이 있은 지 3개월이 지난 뒤였다. 그 사이 안군은 주변의 아무런 도움 없이 혼자서 모든 일을 감당해야 했다. 휴즈 변호사는 "이건 난센스다. 우리 커뮤니티 안에서 매우 슬픈 일이 벌어졌다"는 요지로 최후진술을 마쳤다. 숨을 죽인 채 방청석에 앉아있던 100여 명의 한인들 사이에서 동시에 박수가 터져 나왔고, 그 소리는 법정 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깜짝 놀란 법원 경비원과 경찰들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이 광경을 지켜만 볼 뿐 제재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