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성씨의 소박한 작업실재래식 방법으로 금 세공을 하는 김씨의 작업 도구들. 손 때 묻은 도구들에서 김씨의 세공 연륜이 묻어난다.
김동이
김씨가 처음으로 금속공예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고향 태안을 떠나 부산으로 내려간 22살 당시다. 김씨는 지금도 마음의 고향이라고 여기는 부산의 양지기술원이라는 재활원에서 금 세공과 첫 인연을 맺었다.
몸이 불편한 지체장애인이 배우기에는 결코 쉽지 않은 분야였지만 김씨는 이를 악물고 기술 습득에 열중했다. 함께 받았던 30명의 동기생 중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인원은 고작 5명 남짓. 교육 중간에 힘들다는 이유로 포기자가 속출하면서 김씨 또한 마음의 동요가 있었다고.
하지만, 김씨는 금 세공이 오직 자신이 가야할 길이라고 믿고 인내에 인내를 거듭한 끝에 무사히 기술원을 수료하게 됐고, 다시 고향인 태안으로 올라와 1989년 직접 공장을 운영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김씨가 손수 차려 한때는 금세공에 있어서 태안에서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공장 운영에 위기가 찾아왔고 IMF가 터지기 이전인 1996년에 자식같이 여기던 공장 문을 닫게 된다. 그러나, 세공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 온 김씨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지금의 '골드사'를 차려 15년째 결혼예물을 만들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