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드라마 <공주의 남자>의 경혜공주(홍수현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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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은 조선시대 임금 중에서 가장 불쌍하고 가엾은 이로 기억되고 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왕위에 올라 삼촌에게 왕위도 빼앗기고 목숨도 빼앗긴 그의 짧은 삶은 오늘날까지도 두고두고 대중의 동정심을 자아내고 있다.
그런데 단종 못지않게, 어쩌면 단종보다 더 기구한 운명을 겪은 사람이 있다. KBS <공주의 남자>에 나오는 단종의 누이, 경혜공주(홍수현 분)가 그 주인공이다. 동생처럼 왕이 아니었기에 역사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삶의 궤적을 살펴보면 그의 생도 한없이 불쌍하고 가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공주는 단종처럼 살해를 당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때로는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더 힘든 경우도 있다. 죽지 못해서 사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공주의 삶이 바로 그러했다.
조선 전기의 문신인 이승소의 시문집 <삼탄선생집>에 수록된 경혜공주 묘지(墓誌)에 따르면, 공주는 제4대 세종이 재위할 때인 1435년에 세자 이향(훗날의 문종)과 권씨(훗날의 현덕왕후)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왕이 아닌 세자인 데다가 어머니가 세자의 첩이었기 때문에, 출생 당시의 경혜공주는 공주가 아니었다.
세자의 정실부인 즉 세자빈이 낳은 딸에게는 정2품 군주(郡主). 세자의 첩이 낳은 딸에게는 정3품 현주(縣主)라는 작위를 수여했다. 그것도 출생 직후 곧바로 주는 게 아니라, 보통은 7세 이후에 이런 작위를 수여했다.
세종 건강 악화로 꼬이기 시작한 인생시작은 첩의 딸로 했지만, 초년의 공주는 운이 괜찮은 편이었다. 3세 때, 어머니가 세자빈으로 승격됨에 따라 그는 동궁전 즉 세자의 처소인 경복궁 자선당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왕이 되면 공주가 될 수 있다는 꿈을 안고 어린 소녀는 궁에서 생활했다.
7세 때 어머니가 동생(훗날의 단종)을 낳고 곧바로 죽는 바람에 궁을 떠나게 됐지만, 이때도 그의 삶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이 무렵부터는 정2품 평창군주라는 작위를 받고 거기에 따른 특권과 대우를 향유했다.
그런데 할아버지 세종의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한 15세부터 그의 삶은 꼬이기 시작했다. 해가 바뀌어도 세종의 건강이 호전되지 않자, 왕실에서는 16세 된 공주(당시는 평창군주)의 혼사를 서둘렀다. 세종이 사망할 경우 삼년상 기간은 혼인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될 경우 공주는 18세 이후에나 결혼할 수밖에 없었다. 왕실에서는 보통 10대 초반에 결혼했기 때문에, 18세는 상당히 늦은 나이였다. 참고로 3년상은 윤달을 제외하고 25개월 뒤에 종결되었다.
왕실에서 급히 얻은 배우자는 전 한성부윤(현 서울시장) 정충경의 아들인 정종(鄭悰)이었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공주와 정종은 세종 32년 1월 24일(1450.2.6)에 결혼했다. 이때 공주는 16세였다. <공주의 남자>에서는 공식적인 부마 간택절차를 거쳐 이 결혼이 이루어진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당시 경혜공주는 왕이 아닌 세자의 딸이었기 때문에 그런 절차를 거칠 수 없었다.
그런데 신혼부부가 살림집을 차리기도 전인 세종 32년 2월 17일(1450.3.30)에 세종이 그만 눈을 감았다. 결혼한 지 52일 만에 할아버지가 사망했으니, 살림집 준비는 일단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음력 1월 24일과 2월 17일 사이가 어떻게 52일간이나 되나 하고 의아해 할 수도 있지만, 세종 32년에는 1월 뒤에 윤1월이 있었기에 그렇다. 이들이 살림집을 마련한 것은 세종의 소상(小祥, 사망 1주기 의식)이 끝난 뒤였다. 이때 경혜공주의 신분은 공주였다.
아버지 문종도 세상 뜨고, 숙부는 쿠데타 일으키고공주의 불운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삼년상을 끝내고 한 달 뒤에 아버지 문종마저 세상을 뜬 것이다. 문종의 입장에서는 아버지의 삼년상은 끝내고 눈을 감게 되었으니 마음이 편했을지 모르지만, 공주의 입장에서는 할아버지의 삼년상에 이어 아버지의 삼년상까지 치러야 했으니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겪었을 것이다. 이때 그의 나이 18세였다.
불운은 아직 다 끝나지 않았다. 아버지의 삼년상이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숙부 수양대군(훗날의 세조)이 쿠데타 계유정난(1453)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로써 동생인 단종은 허수아비 임금으로 전락했다. 이때 공주는 19세였다.
운명은 공주의 편이 아니었다. 2년 뒤인 21세 때에, 공주는 수양대군이 임금이 되고 동생이 상왕으로 '승격'되는 '기쁨'을 누리는 동시에, 남편인 정종이 강원도 영월로 귀양 가는 '슬픔'을 맛봐야 했다.
정종이 귀양을 간 것은, 그가 단종을 감싸고 도는 금성대군(수양대군의 동생)과 친했기 때문이다. 정종의 유배지는 영월에서 경기도 양근, 한성, 수원 및 김포로 변경됐다. 유배지가 수원으로 바뀐 뒤부터는 공주도 그를 동행했다.
동생 단종 죽은 뒤 4년 후 남편은 능지처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