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후폭풍으로 이틀 연속 사이드카가 발동된 가운데,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시황판에 코스피 지수가 1700선이 무너진 1696.16를 표시하고 있다.
유성호
글로벌 경제 위기. 그 위험한 파고가 태풍처럼 몰려들고 있다. 정부의 입만 쳐다보고 '괜찮을 거야'를 주술처럼 읊조리고 있어야 하는지, 아니면 '더블딥' '국가신용등급' '서킷브레이크' 등 뜻조차 쉽지 않은 용어들을 싸안고 제 살길을 찾아야 하는지, 보이지 않고 이해되지 않는 공포가 더 불안하다. 주식이야 폭락하든 말든 깡통 주식 한 주, 그 흔한 펀드 하나 없는 서민의 입장에서야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면 그만이라고,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바야흐로 세계화 시대. 나비의 날갯짓이 태평양을 넘으면 태풍이 된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나라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경제 대국 미국. 그 심상찮은 변화는 우리나라와 놀랄 정도의 똑같은 모순을 내재하고 있다는 그 심각성에 우선 주목해야 한다. 단지 경제대국의 신용등급이 떨어져 우리나라 주식에 악영향을 주고 경제회생에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문제로만 진단하고 대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효과적이지도 않다.
최고의 경제대국 미국이 AAA등급에서 AA+등급으로 강등되기까지 어떤 문제가 내재되어 왔는지, 우리나라 경제의 토대는 미국의 현사태에 반추해 바로잡고 고칠 것은 없는지 이 기회에 적극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문제없다, 안심해라' 라는 말은 신용 등급 강등사태가 있기 전 미국 관료들이 수도 없이 반복했던 말이고, 걱정어린 시선을 가진 우리 국민들에게 우리 경제관료들이 또 반복하는 말이다. 그러나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고 있기에는 가려진 불안요인이 너무나 많은 것이 사실이다.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 경제 패권 상실의 전조일 뿐
우연이었을까?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이 있기 몇 주 전 서점에서 미국의 민얼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 한 권이 번역 출판됐다. '타임'이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뽑은 거시경제학자 담비사 모요가 쓴 <미국이 파산하는 날>(원제: How The West Was Lost, 중앙북스)이라는 책이다.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사태를 예견이라도 하듯 시기적으로 절묘하고 시선 또한 날카롭다. 서구인의 시각에서 미국에 대한 희망과 애정을 가지고 썼다고는 하지만 미국이 세계에서 경제패권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매우 객관적이고 설득력 있게 설명해 내고 있다.
보조금을 통해 주택을 소유하는 문화가 장착된 이후 나타난 직접적인 결과가 개인이나 국가가 모두 담보비율을 최대한 높여 돈을 빌리는 이른바 부채의존형 사회였다. 즉 사람들이 자신의 재력범위를 넘어서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는 발상에 익숙해진 생활방식을 조장하고 장려한 것이다 -<미국이 파산하는 날> 중에서2008년 미국을 금융위기로 몰아넣은 서브프리임 모기지론 사태 이전 미국의 모습은 이러했다. 돈을 빌릴 수 없는 불량신용자들에게 정부가 나서서 보증하고 보조해서 주택구매를 부추겼다. 은행은 정부의 보증을 믿고 최저리로 시장에 돈을 풀었고, 집값 상승이 빛난 투자가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다. 가정경제가 파산하고 집을 차압당하고 은행이 도미노처럼 파산했고, 정부는 천문학적 공적자금을 쏟아 부었다. 너무나 비싼 수업료를 지불한 미국. 그 휴유증이 여전히 미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진단한다.
또 하나의 진단은 인구의 노령화와 미비한 교육투자로 노동력이 양과 질적인 면에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평균 출산율을 밑도는 저출산 문제는 필연적으로 노동연령의 고령화를 낳고 조만간 엄청한 사회비용을 유발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빈부 격차에 따른 교육 기회의 편협성은 점점 빈부의 차이를 벌려놓고, 노동의 질적 수준을 끌어올리지 못하고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담비사 모요의 주장에 따르면 성장을 떠받치는 2개의 축 자본과 노동에서, 자본은 생산적인 곳으로 재투자되기보다 과도하게 비생산적인 곳으로 소비되고 있고, 노동은 질과 양에서 성장을 담보할 수 없을 정도로 노령화되고 교육은 노동의 질을 높여주는 데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미국이 독점적으로 가져왔던 기술력도 보편화됨에 따라 중국 등 신흥국들과 힘겨운 경제 패권 전쟁을 치러야 될 것으로 미국의 현재와 미래를 조명하고 있다.
물론 이 한 권의 책으로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 사태를 규명하고 예단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런 국가신용등급 강등 사태가 미국 내 공화당과 민주당의 파워 게임이나 S&P 분석 오류에 따른 잘못된 판단이 아니라, 잘못된 정책의 반복에 따른 필연의 결과임을 증명하기에는 충분하다. 그런데 내가 놀란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대한민국이 미국이 걸어온 잘못된 길을 똑같이 밟고 가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잘못된 길 답습하는 이명박 정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