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 앉은 왼쪽 뒷바퀴 차체쇼크 업소버가 나간 탓으로 추정된다.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고치지 않고 그냥 달리기로 했다. 차가 좁아 무릎을 뻗지 못하는 윤의의 다리가 보인다. 여객기 이코노미석보다 좁은 이 차에서 아이들은 하루 평균 10시간쯤을 보내야했다.
김창엽
아들 셋은 각자의 자리를 정한 뒤, 차에 올라탔다. 조수석이 조망도 좋고 편할 것 같지만, 어느 자리 가릴 것 없이 발 밑에 한결같이 베개 2개쯤 부피인 침낭이 깔려 있으므로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네 명이 다 무릎을 펴지 못하는 상태에서 하루 종일을 달리는 차 안에 있는 건 마찬가지이다. 다행히 젊은 친구들이라 그런지, 하루 10시간 이상을 도로 위에서 보내도 멀미 같은 건 전혀 하지 않았다.
원래 오늘은 아침 일찍 일어나 서둘러 유스호스텔을 나서야 했었다. 하지만 전날 새벽 3시가 다 될 때까지 술잔을 기울였던 아이들은 아침 잠이 현저하게 부족한 눈치가 역력했다. 그래서 잠을 좀 더 재웠다. 오전 9시가 다 돼서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했다. 아침 일찍 출발했다면 산타페 북쪽의 타오스(Taos)를 거쳐 로키산맥 남부의 험준한 산길을 너머 덴버쪽으로 갈 생각이었다.
타오스는 북미 원주민이 많이 몰려 사는 로키산맥 동쪽 기슭의 소도시 가운데도 원주민 정서가 특히 짙게 깔린 소도시이다. 흔히 어도비(adobe)로 불리는 흙집을 짓고, 푸에블로(pueblo)라 일컫는 마을을 형성해 사는 원주민 부족들의 삶의 터전이다. 과거 이 지역을 지나면서 느낀 것이지만, 유럽계 백인을 위시한 타지출신들에 대한 거부감이 특히 두드러진 곳이다. 인디언 보호구역 등 미국의 다른 원주민 밀집 지역과는 달리 이 곳에서는 외부인이 사진조차 함부로 찍을 수 없다.
이 곳 원주민들의 얼굴 표정은 북미의 다른 지역 원주민들에 비해 놀랄 만큼 전체적으로 무거운 편이다. 그런 걸 보고 뭔가를 생각할 계기를 마련해주고 싶었는데, 녀석들의 늦잠으로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또 하나, 타오스 방문을 생략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던 이유는 2000~3000m 높이의 산 속으로 난 길을 넘어가는데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차가 중량 초과 상태인데다, 왼쪽 뒷바퀴 차체가 내려앉은 상태라 사고가 나면, 지나가는 차도 매우 드물고 전화도 터지지 않는 깊고 깊은 로키 산속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될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