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 중덕해안 가는 길에 있는 고길천 작가의 또다른 그래피티 작품.
이주빈
우연히 다큐를 보다가 알게 되었어요. 몽골 사람들은 말을 소중하게 여긴다는데 이름이 없다는군요. 이름이 없는 대신 말의 털 색깔로 부른답니다. 몽골에서 말의 털 색깔 이름은 300개가 넘는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고유한 이름 대신 말의 특징을 잘 살려낸 털색깔이 바로 이름인 게지요.
사람처럼 이름이 권력이 되는 꼴을 보기 싫었을까요? 지금 제 귀에 이름 하나가 달랑달랑 거립니다. 강정이라는 마을이요. 4년 전 그곳은 평화로웠데요. 주민들이 말하는 평화는 이런 것이겠지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
강정으로 가기로 마음먹었을 때, 잠깐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내가 왜 간다고 했을까?' 그것은 불편함이었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편하다는 말, 외면하려 하기 때문에 편하다는 말보단 차라리 불편함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행기 타고 제주도로 가는 길은 황홀했습니다. 바다를 건넌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짜릿하잖아요.
공항에 내려 몇몇 사람을 더 만나 4.3평화공원에 들렀어요. 가까운 과거에 이런 학살이 자행됐음에도 공개되기까지 어마어마한 시간이 들었지요. 아홉 명 중 한 명이 학살됐다면 도민 중 무작위로 추출된 '나'의 누군가는 학살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때의 학살을 견뎌내고 연좌제를 견뎌낸 슬픔 뒤에는 완벽한 침묵만이 살아가는 방법이었는지도 몰라요. 강정마을에 가기 전 4.3을 기억한다는 건 침묵을 지키지 않겠다는 약속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지금 강정 마을에 학살의 움직임이 있습니다. 육체적 학살만이 학살은 아니라는 것, 더 무서운 것이 바로 외면당하는 마음의 학살입니다.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건설된다는 소식 이전엔 평화로웠겠지요. 그냥 농사짓고, 민박 치고, 배 타고, 장사 하고 여느 마을과 다를 바 없었겠지요. 평화는 그렇게 재미없는 것이니까요.
바다를 막고 시멘트 들이붓는 게 미항입니까강정마을은 훌쩍 그렇게 다녀올 수 있는 마을이 아니에요. 시간과 돈을 조금 많이 들여야 했어요. 그래서 더 외로웠을 거예요. 중덕 바닷가는 제가 본 바다 중 가장 시원하고 깨끗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조용했습니다. 때론 따분할 수 있겠네요. 뿅뿅 뚫린 바위들 속에서 어린 게들이 불쑥 나타날 것만 같았어요. 그곳에서 '붉은발말똥게'를 처음 만났어요. 바위들 중간 중간 바닷물이 아닌 샘물이 솟는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그 물을 마시면 '캬'하는 소리가 절로 나와요.
열댓 명 둘러앉을 수 있는 바위아고라와 그 곁 바위가 쳐놓은 그늘에 누워 파도소리 듣고 맑은 하늘 바라보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신나는데 전 직접 했다니까요. 이런 평화로운 강정을 군사기지로 만들겠다니요. 이 바다를 해군 혼자 차지하겠다니요. 제가 누차 얘기하잖아요. 평화는 시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조용하고 재미없는 것이라고.
해군기지 앞에 이런 선전문이 붙은 걸 봤어요. '세계적인 미항'이 될 거라고. 웃기고 있습니다. 바다를 가로막고 돌들을 깨 부수고 시멘트를 들이붓는 것이 미항이던가요? 어느 나라의 미항이 그렇던가요? 저는 공부를 많이 한 학자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니어서 유식한 말에는 대꾸를 못해요. 다만, 이것이 상식적으로 가능한가에 주목합니다. 유명한 '올레길'에 있는 강정에 군인들이 진을 치고 경찰들이 시도 때도 없이 위협을 하고 주민들을 반으로 갈라놓고 서로 헐뜯게 하는 것이 상식은 아니에요.
별이 쏟아지는 밤에 우리는 김남주를 읽었습니다. 어느 시인은 즉석에서 시를 써서 낭송을 했어요. 조용한 밤하늘에 시가 촘촘히 박혔어요. 어눌한 말솜씨였지만 바람결에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우리는 가끔 말문이 막혔어요. 그냥 멍하니 바닷소리만 듣고 가만히 눈을 감았습니다. 이곳이 바로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없어진다는 강정이거든요. 듣는 사람이 없어도 보는 사람이 없어도 서로가 서로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있는 이곳 강정마을이 바로 평화랍니다. 평화는 그렇게 가까이 있는 거거든요.
시멘트보다 흙을, 폭력보다 비폭력을 사랑하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