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남소연
박 교수는 지금까지 검열자 일기 9편을 올렸다. 한 주에 2편 꼴이다. '자살 방조' 글이 무혐의 처리된 일부터 폭발물 제조법, 대포폰 문제 등 아슬아슬한 '경계선'있는 다양한 사례들을 짚었다.
- 앞으로도 '검열자 일기'는 계속되나?"검열자 일기는 계속될 것이다. 이름만 '방통심의위 일기'로 바꾸려 한다. 논란의 중심은 방통심의위라는 걸 알리려는 것이다. 국민이 뭘 봐야 하는지 재단하는 기구인데 국민이 잘 모른다. 결과적으로 내 홍보만 돼 버리는 것 같다.(웃음)
과거 국방부 불온서적 리스트도 뭘 보면 안 되는지 리스트를 주지 않나. 인터넷도 심의하면 뭘 보면 안 되는지, 올리면 안 되는지 알려 줘야 한다. 한 달에 몇 백 건씩 삭제되고 있는데 모두 공개해야 한다. 유해한 내용이라고 공개하지 않는데 그 부분을 지우고 보여 주면 된다. 국민이 뭘 보는지, 듣는지를 통제한다는 건 정신 생활을 통제하는 건데 어떤 기준으로 하는지는 국민의 비판과 감시 속에 이뤄져야 한다.
검열자 일기는 일 주일에 두 번씩 쓰면 앞으로 3년이면 300개 넘을 거다. 그게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방통심의위에서 '금서 목록'을 공개하지 않는 한 내 목록이 유일한 게 될 테고, 그 중에서 경계선상에 있는 것만 골라 하고 있으니 더 가치 있는 자료가 될 것이다."
"난 방통심의위 '트로이 목마'가 아니라 '제갈공명'"방통심의위는 요즘 위기다. 진보 진영에선 방통심의위가 국가 검열 기구라며 민간 자율 심의에 맡기라고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 왔고 게시자 의견청취도 없이 게시 글을 삭제하는 통신심의 규정은 고등법원에서 위헌 제청을 한 상태다.
- 방통심의위 활동에 누구보다 비판적이었던 박 교수의 위원회 활동이 직원들 처지에선 내부 해체를 부추기는 '트로이 목마'처럼 보이지 않겠나."그렇게 생각하는 분이 많더라. 그런데 직원 입장에서는 나를 '트로이 목마'가 아니라 '제갈공명'으로 봐야 한다. 내 제안대로 규정과 절차를 변경하고 기준을 엄정하게 하면 (방통심의위가) 더 '롱런'할 것이다.
직원들도 지금 하는 일이 보람 있는 업무는 아니다. 어차피 의도적으로 올리는 불법 글들은 지워도 지워도 다시 생기는 '두더지 잡기' 게임 같다. 문제는 올리는 사람도 불법인지 모르는 애매한 것에 대한 심의인데, 게시자 의견도 안 물어보고 내리고 있다. 그건 재판으로 치면 상대방 변호 없이 일방적으로 한쪽 얘기만 듣는 건데, 그렇게 해서 이기면 '밸류(가치)'가 있겠나.
사실 직원들도 거수기다. 식약청이니 마사회니 스포츠토토니 연락 오면 (문제) 있는지 없는지만 판단하고 그쪽 의견대로 안 따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직원들도 상대방이 있고 토론이 있는 일에 정력을 쏟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 난 '트로이 목마'가 아니라 직원들에게 훨씬 더 오랫동안 안정된 직장을 제공할 비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왜 싸우느냐고? '표현의 자유' 위축 막으려는 것" 하지만 정작 위기에 처한 건 방통심의위가 아니라 우리나라 '표현의 자유' 수준이다. 그동안 방통심의위의 통신심의가 비판을 받은 건 정치 편향성 때문이다. 트위터 계정이 대통령 욕설을 연상시킨다고 차단된 '2mb18nomA'건이 대표적이다. 이날 연구실에서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는 현재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 '표현의 자유' 현실을 짚는 즉석 강의를 방불케 했다.
"왜 싸우냐고? '표현의 자유' 위축 효과 때문이다. 합법과 불법의 선을 명확하게 긋지 못해 합법적 표현도 스스로 자제하는 게 위축 효과인데, 다른 영역에서는 위헌이 아니지만 '표현의 자유' 영역에선 '위헌'이라고 한다. 밥 먹는 욕구와 달리 말은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에 쉽게 위축된다.
'미네르바'가 무죄가 됐지만 이후 수많은 고수들이 토론했던 다음 아고라는 회복되지 않고 있다. MBC 'PD수첩'도 무죄 판결됐지만 이후 방송의 권력 비판은 점점 찾아보기 힘들게 돼 가고 있다. 언소주 같은 소비자 운동도 사법처리 한 번에 상당히 위축돼 버렸다.
'2MB18nomA' 같은 경우도 그 말은 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띄워 놓으면 상당한 위축효과가 있을 것이다. 인터넷은 워낙 너른 공간이라 쉽게 위축되진 않겠지만 계속 부정적인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표현의 자유 관련 법제도 후진적... 검찰도 큰 영향"박 교수는 지난 2009년 미네르바 재판 과정에서 문제가 된 허위사실유포죄가 짐바브웨에서조차 2005년 위헌 판결이 났다고 해 우리 법 제도의 후진성을 꼬집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우리나라의 '표현의 자유' 수준을 어떻게 보나?"현실과 법 사이의 간극이 큰 게 한국 사회 특징이다. 성문화를 봐도 돌아다녀 보면 우리처럼 안마방, 룸살롱 찾기 쉬운 나라가 없다. 이런 과도한 유흥 문화는 남성 중심 직장 문화, 여성 취업 차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법 제도만 보면 간통죄도 있고 성매매도 처벌하고 심지어 '혼인빙자간음'에 낙태도 금지하고 엄격한 것 같지만 실제로 낙태, 성매매, 간통을 자유롭게 하는 나라다.
표현의 자유도 마찬가지다. 법제도를 보면 정말 후진적인 상황이다. 대표적인 게 사람이 진실을 말해도 명예훼손으로 처벌될 수 있다는 '진실적시 명예훼손'이다. 법조문에 있는 나라는 많지만 실제 그것 때문에 하고 싶은 말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모욕죄'도 전 세계에서 4개 나라 밖에 없고, '명예훼손 형사처벌'은 반대파 탄압에 남용돼 왔기 때문에 폐지하라는 게 국제인권기구들 입장인데 전 세계 명예훼손으로 투옥된 사람들의 1/3이 우리나라 사람이다."
지난 2008년 언소주의 조선일보 광고주 불매운동 재판 당시 법률 자문을 맡기도 했던 박 교수는 노조 활동을 옥죄는 도구로 악용돼온 '업무 방해죄'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업무 방해죄'는 우리나라하고 일본밖에 없는데 일본이 고도성장 시절 노조 탄압하려고 만든 것을 우리는 지금도 이용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임금과 노동 조건이 안 맞아서 일 못 하겠다는데도 사용자 업무 방해로 처벌하는, 노동자를 노예로 만드는 조항이다. 그런 조항이 살아 있으니 2008년 언소주의 소비자 운동을 범죄시하는 논리로 발전한 거다. 공갈죄, 협박죄, 강요죄도 마찬가지다. '표현의 자유'는 그 방법이 부당하지 않는 한 공포심을 느끼더라도 용인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