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얏! 작은 섬, 산꼭대기에서 도둑게에게 물렸어요

서해 옹진군 이작도 가는 길과 섬에서 만난 동물들

등록 2011.08.02 13:35수정 2011.08.02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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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가락을 물고 달아난 도둑게의 집게발 ⓒ 이승철

내 손가락을 물고 달아난 도둑게의 집게발 ⓒ 이승철

"아빠, 저게 뭐야? 저 풀 속에서 움직이는 저 빨간 거."

 

앞장서 걷던 꼬마가 발밑의 풀숲을 가리킨다. 다가가 살펴보니 선뜻 알아볼 수가 없다. 풀이 너무 울창한데다 움직이는 물체의 속도가 빨랐다. 그런데 녀석이 잽싸게 달아나다가 잠깐 멈췄다. 도둑게였다. 갈색과 빨간색이 어우러져 빛깔고운 예쁜 모습이었다. 한 번 잡아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손가락을 내밀어 몸체를 잡으려는 순간 왼손 검지에 깜짝 놀랄 만큼 강한 통증이 밀려왔다.

 

"아얏!"

나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팔을 움츠리는 순간 손가락 끝부분에 게의 집게발이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놀라서 허둥거리는 동안 게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게가 내 손가락을 물어 상처를 입힌 후 자신의 집게발을 잘라버리고 달아난 것이다.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고 달아나듯이... 아빠와 함께 걷던 꼬마가 덩달아 놀랐는지 눈이 동그래졌다. 마침 뒤따르던 일행이 두 손에 힘을 잔뜩 주어 집게발을 벌려 빼냈지만 욱신거리는 통증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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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자욱한 인천 연안부두 ⓒ 이승철

안개 자욱한 인천 연안부두 ⓒ 이승철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호우가 쏟아져 많은 피해를 주었던 비가 그친 7월 29일, 인천광역시 옹진군 서해바다에 떠있는 대이작도를 찾았다. 우리 일행들은 아침 8시에 인천 연안부두에서 출항하는 덕적도행 연안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짙은 안개가 뒤덮인 바다는 여객선의 출항을 허용하지 않았다.

 

연안부두에 꼼짝 못하고 붙잡혀 있는 여객선에서 오전 한나절을 보내며 선실에서 점심을 먹었다. 인천을 수없이 드나들었지만 여객선이 이렇게 오랜 시간 붙잡힌 것은 처음이라는 옆자리의 할머니는 우리들의 목적지인 이작도 횟집 할머니였다. 점심도 거르며 잠만 청하는 아주머니는 자월도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분인데 몸이 아파 인천에 있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짙은 안개에 붙잡혀 항구 배위에서 보낸 4시간 40분

 

그렇게 지루하게 기다린 지 4시간 40분만인 12시 40분이 되었을 때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개는 아직 다 걷히지 않았다. 가끔씩 휩쓸고 지나가는 안개 때문에 조금은 불안한 항해였지만 승객들이 던져주는 새우깡 맛에 길들여진 수많은 갈매기들과 함께 여객선은 연안부두를 벗어났다.

 

승객들은 대부분 선실에서 지루하게 쉬고 있다가 대부분 갑판 위로 몰려 나왔다. 어린이들과 젊은 층들은 예의 새우깡을 갈매기들에게 던져주며 즐거운 표정이다. 희뿌연 안개 속 바다위로 불쑥 나타난 인천대교 밑을 통과하자 여객선은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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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에게 새우깡을 내밀고 잇는 어린이 ⓒ 이승철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내밀고 잇는 어린이 ⓒ 이승철

 

"엄마, 엄마, 저 갈매기 좀 봐? 내가 내민 새우깡은 쟤가 모두 받아먹는다."

 

정말 그랬다. 엄마와 함께한 어린이는 새우깡을 한 개씩 손에 들고 갈매기들에게 내밀었는데 잿빛 갈매기 한 마리가 다른 갈매기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거의 독점하여 받아먹고 있었다.

 

밀짚모자를 쓴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은 새우깡을 입에 물고 갈매기들을 향하여 얼굴을 불쑥 내민다. 사람이 입에 물고 있는 새우깡을 과연 갈매기가 받아먹을 것인가? 그러나 다음순간 갈매기 한 마리가 스치듯 날아가며 잽싸게 새우깡을 물고 달아나자 여학생이 환호성을 지른다.

 

새우깡 받아먹으려다 사람 손에 붙잡힌 갈매기

 

그러나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먹을 것에 욕심을 부리던 갈매기에게 문제가 생겼다. 젊은 청년 한 사람이 가깝게 비행하는 갈매기의 날개를 잽싸게 붙잡은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바다 위 공중을 날고 있던 갈매기가 사람의 손에 붙잡히다니.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어이없이 사람에게 붙잡힌 갈매기에겐 위기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청년은 시험 삼아 장난을 쳐본 듯 금방 갈매기를 놓아주었다. 사람 손에서 풀려나자 놀란 듯 잠깐 뒤쳐져 날던 그 갈매기는 다시 새우깡을 받아먹겠다고 다른 갈매기들 사이로 섞여 들었다. 먹이를 향한 본능이 생명의 위험도 잊게 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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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손에서 새우깡을 낚아채가는 갈매기 ⓒ 이승철

사람의 손에서 새우깡을 낚아채가는 갈매기 ⓒ 이승철

그렇게 한 시간 쯤 달렸을 때 주변이 다시 짙은 안개로 휩싸였다. 여객선이 속도를 줄였다. 이런 상태라면 항해를 계속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러나 잠시 후 바다는 해맑은 얼굴을 드러냈다. 안개가 말끔하게 걷힌 것이다. 여객선이 첫 번째로 들린 섬은 자월도였다. 많은 승객들이 자월도에서 내렸다. 일부 섬주민들과 대부분 피서객들로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두 번째로 들린 섬은 승봉도. 이곳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하선했다. 거의 대부분 가족단위 피서객들이었다. 바다는 잔잔했다. 그러나 물위에는 엊그제 쏟아진 폭우가 떠내려 보낸 쓰레기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승봉도를 지나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이 우리들의 목적지 이작도, 이작도는 대이작도와 소이작도 두 개의 섬으로 나뉘어 있었다. 섬과 섬 사이에 있는 대이작도 선착장은 조용한 풍경이었다. 돌아갈 배편을 물으니 1시간 40분 후에 있다고 한다. 당일치기 섬여행 일정상 섬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짧았다. 아침에 정시에 출항했더라면 4시간 40분이라는 여유가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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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아산에서 내려다본 대이작도 어항과 안개에 휩싸인 소이작도 ⓒ 이승철

부아산에서 내려다본 대이작도 어항과 안개에 휩싸인 소이작도 ⓒ 이승철

섬 안내지도를 살펴보니 선착장 왼편에 불쑥 솟아 있는 산이 해발 159미터인 부아산이었다. 섬에 머물 수 있는 짧은 시간에 오를 수 있는 산이라고 판단하여 곧장 산으로 향했다. 바닷가와 마을 안길을 지나 산으로 오르는 길은 조금 가파르긴 했지만 군데군데 열려 있는 산딸기를 따먹으며 여유로웠다. 그래도 비가 그친 첫날이어서 습도가 높은데다 모처럼 햇볕이 쨍하여 이마와 등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정상으로 가는 능선에 오르자 예쁜 정자 하나가 저홀로 쓸쓸하다. 정자가 있는 곳에서 바닷가 전망대가 있는 곳으로 이어진 능선길에는 그리 크거나 우람하진 않지만 뾰족뾰족한 바위들이 서있어 능선길의 운치를 더해준다. 이 섬에서 가장 높은 해발 159미터 전망대에 오르자 발아래 펼쳐진 바다와 해안선, 그리고 맞은편의 바다안개가 감싸고 있는 소이작도 풍경이 환상적이다.

 

행정구역상 인천광역시 옹진군 자월면 이작리인 이 섬은 총 면적이 2,57평방키로미터에 해안선 길이 18키로미터인 작은 섬이어서 전경이 거의 바라보인다. 시간은 어느새 돌아갈 배시간 40분을 남겨두고 있었다. 햇볕은 뜨거웠지만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시원하다. 잠깐 앉아 땀을 들이고 하산길로 나섰다. 그런데 그 하산길에서 아빠와 함께 온 어린이 뒤를 따르다가 도둑게를 만나 손가락을 물린 것이다.

 

작은 섬 산위에서 도둑게에게 물리고, 뱀에 놀라고

 

"게는 바닷물속이나 갯벌에만 사는 줄 알았는데 산위에 사는 게도 있었네."

 

모두들 신기해한다. 산위에서 게를 만난 것은 모두 난생 처음이라고 한다. 게의 집게발이 독은 없으리라 생각되었지만 물린 손가락이 제법 욱신거렸다. 올라올 때와 다른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자 콘크리트 포장도로다. 그런데 저만큼 앞서 걷던 조금 전의 그 어린이가 깜짝 놀란 듯 주춤하고 발걸음을 멈춘다. 이번에는 뭘까 하고 다가가보니 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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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이작도 하산길 도로에서 만난 뱀 한 마리 ⓒ 이승철

대이작도 하산길 도로에서 만난 뱀 한 마리 ⓒ 이승철

길이 30센티미터쯤이나 될까, 그리 크지 않은 뱀 한 마리가 도로를 건너 산으로 오르려다 콘크리트 벽에 막혀 주춤거리다가 우리 일행들을 만나 놀란 모습이다. 뱀은 펄쩍 뛰어 오르듯 콘크리트 위로 올라가려 했지만 여의치 않자 허둥지둥 다시 도로를 가로지른다. 마침 위에서 내려오는 승용차가 있어 잠깐 정지시키고 뱀이 안전하게 도로를 건너가기를 기다렸다. 뱀은 도로를 건너자 풀숲으로 사라졌다.

 

"작은 섬, 낮은 산에서 별 걸 다 만났네 그려. 도둑게에 뱀까지.. 거참."

 

일행들은 모처럼 찾은 섬에서 만난 진기한 체험들을 추억으로 간직하고 부지런히 선착장으로 걸었다. 다행이 여객선 시간은 조금 여유가 있었다. 선착장 근처 가게에서 아이스 콘 한 개씩으로 산행 피로를 풀고 있을 때 섬과 섬 사이 좁은 해협으로 우리들을 태우고 돌아갈 배가 나타났다.

 

돌아오는 뱃길에서는 인천대교 위로 붉게 지는 여름 해를 볼 수 있었다. 안개 때문에 발목을 붙잡힌 항구의 배위에서 4시간 40분, 바다에서 오가는 뱃길 4시간, 그리고 작고 아담한 섬에서 1시간 40분. 좋은 일정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무섭게 쏟아지던 빗줄기가 모처럼 반짝 그친 날이어서 일까, 우리들의 서해 대이작도 짧은 섬여행은 즐겁고 이색적인 체험으로 가득한 길이었다.

#대이작도 #연안부두 #도둑게 #뱀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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