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생활 시작하고 생긴 친구는 벌레뿐"

서울역 노숙인 강제퇴거 반발... 코레일, 퇴거조치 22일로 연기

등록 2011.08.02 08:57수정 2011.08.02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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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역 노숙인 강제퇴거 규탄집회에 모인 노숙인과 시민단체 회원들
서울역 노숙인 강제퇴거 규탄집회에 모인 노숙인과 시민단체 회원들윤성원

"우리 집? 저기 서울역 안이야... 쫓아낼 때까지는 있어야지."

서울역에서 11년간 살았다는 한아무개씨(55)의 말이다. 그는 더운 듯 계속 땀을 훔쳐냈다. 한씨는 "지난밤에도 서울역 안에서 잠을 잤다"며 "일단 쫓아낼 때까지는 서울역에서 지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폭우가 지나간 1일 저녁 후텁지근한 날씨 탓인지 노숙인들도 힘들어 보였다. 몇몇 노숙인은 윗옷을 올리고 배를 드러낸 채 서울역 광장에 늘어져 있었다.

"서울역은 나의 집... 노숙인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

지난 7월 20일 코레일 측에서 퇴거조치를 발표한 이후 서울역에서 지내는 노숙인들은 곧 잠자리를 잃을 처지에 놓였다. 이에 홈리스행동 등 20여 개 시민단체는 "서울역 노숙인을 퇴거할 것이 아니라 적절한 지원을 선행해야 한다"며 퇴거조치 반대 의사를 밝혔다.

퇴거조치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 1일, 코레일은 여론을 의식한 듯 퇴거조치를 22일로 연기했다. 코레일은 "최근 며칠 반복된 집중호우와 이어진 혹서기로 노숙인들의 건강이 우려되어 퇴거조치를 연기했다"고 밝혔다.

오후 5시, 식사를 마친 노숙인들이 하나둘씩 서울역 광장으로 모였다. 집회가 시작되고 5시 30분 무렵이 되자 서울역 인근 노숙인과 홈리스 대책 관련 시민단체 회원 등 200여 명이 자리를 잡았다.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사는 유종인씨는 "오늘 아침 국가인권위원회에 직접 전화해 20분간 다퉜다"면서 "노숙인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역에서 사는 또 다른 노숙인 허아무개씨는 "실업급여를 받고 싶어도 신청을 하러 가면 근무 일수가 며칠씩 모자라 받을 수 없었다"며 노숙 생활을 시작한 계기를 밝혔다. 허씨는 "노숙을 시작할 때는 큰 가방으로 시작했지만 가방이 줄어들면서 나도 버리게 됐다"며 "세상을 버리고 얻게 된 친구는 벌레들뿐"이라고 말했다.


발언을 이어간 노숙인들은 노숙 생활의 힘든 사정을 호소했다. 이들은 "여름엔 벌레가 많아도 밖에서 잘 수 있지만 겨울에는 정말 잠잘 수 있는 곳 없다"며 "노숙인도 안정적으로 잠잘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강제 퇴거방침 철회하라"

박경석 빈곤사회연대 공동대표는 노숙은 "범죄의 문제가 아닌 인권의 문제"라며 "노숙인의 자활대책을 마련하여 사회복지의 역사를 새로 써야한다"고 강조했다.

임성규 서울시사회복지사협회 회장 역시 "이렇게 더운 혹서기에 노숙인을 내모는 것은 반윤리·반도덕적 행위"라며 "코레일은 공공역사의 책임을 다할 것"을 촉구했다. 임 회장은 "서울시와 코레일은 사회복지사를 투입하여 노숙인 자활 대책을 논의하고 노숙인 상담창구를 역사에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규탄집회는 서울복지시민연대, 전국홈리스연대 등 20여 시민단체가 주최했다. 이들 시민단체는 코레일의 퇴거조치 연기에 대해 "단순히 퇴거시기를 늦춘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며 "강제퇴거 방침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덧붙이는 글 | 윤성원 기자는 오마이뉴스 14기 대학생 인턴기자 입니다.


덧붙이는 글 윤성원 기자는 오마이뉴스 14기 대학생 인턴기자 입니다.
#서울역 #노숙인 #홈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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