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에 있는 418기념비
박의연
"안녕, 안녕, 안녕하십니까! 민족 고대! 호성 미디어! 파릇파릇한 11학번! 제 이름은 ○! ○! ○! 당차게 인사드립니다!"
대학교에 갓 입학한 필자가 올 3월, 주야장천 외쳐댔던 구호, 그렇다. 바로 '에프엠(FM, 큰 소리로 자기를 소개하는 것) 구호이다. 학기 초 대학가 술집에는 어느 대학 할 것 없이 각양각색의 에프엠 구호가 울려퍼졌을 것이다.
이 에프엠의 첫머리는 지난 민주화투쟁 시절 만들어진 각 학교의 자랑스러운 이름으로 시작한다. '통일연세', '청년서강', '애국한양', '자주경희', '해방이화' 등. 그중에서도 필자의 모교인 고려대학교의 이름 앞에는 '민족'이라는 말이 붙어 있다.
왜 고려대학교를 '민족고대(民族高大)'라 부를까? 그 이유는 '사발식', '고연전'(해마다 가을에 펼쳐지는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 간의 정기 체육경기. 홀수 해에는 '고연전', 짝수 해에는 '연고전'이라는 공식명칭을 번갈아 쓴다. 올해는 홀수 해이므로 고연전이라 표기)과 함께 이른바 '고대생의 3대 관문'이라 불리며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는 '4·18구국대장정'에서 찾을 수 있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그때' 고대생들'나라를 구하고자 먼 길에 나선다'는 '구국대장정(救國大長程)'. 1960년 4월에는 이승만 독재 정권에 항거하며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수많은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섰다. 고대생들이 그 거리로 나온 날이 바로, 역사적인 4·19혁명이 시작하기 하루 전인 4월 18일이었다.
그날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그 뒤로 해마다 4월 18일이면 수백에서 수천 명의 고대생들이 서울 안암동 고려대에서 수유리 4·19묘역까지 왕복 16km의 행진을 한다. 지금은 거의 '달리기' 수준이 돼 버렸지만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행진을 막는 경찰과 몸싸움을 했을 정도로 격렬한 행진이었다.
4·18구국대장정의 더 자세한 역사를 알아보기 위해 고려대가 보관하고 있는 자료를 찾아보기로 했다. 여기서 문제! 고려대에 있는 '4·18기념관에는 4·18구국대장정 관련자료가 있다? 없다?
정답은 "없다!"이다. 4·18기념관 담당자는 4·18기념관은 이름만 4·18기념관일 뿐 4·18구국대장정에 관한 자료는 보관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더욱이 4·18구국대장정은 '학교' 행사가 아니라 '학생' 행사이므로 총학생회에 알아보라는 말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