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드라마 <공주의 남자>.
KBS
수양대군의 딸과 김종서의 아들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했다는 내용의 KBS 드라마 <공주의 남자>(수목 오후 09:55~ 방송)가 지난 20일부터 방송되고 있다. 서로 원수지간인 수양대군과 김종서의 자녀들이 사랑을 했다니, 줄리엣과 로미오의 슬픈 사랑을 연상케 하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공주의 남자> 홈페이지에서는 그 둘의 사랑이 야사에 근거한 이야기라고 했다. 그 말이 정말 사실인지에 관해서는 이 시리즈의 다음번 기사에서 살펴보기로 하고, 이번 기사에서는 <공주의 남자> 제1부 및 제2부에 나타난 왕실의 결혼과 관련된 당시의 사회분위기에 주목해보자.
드라마 제1부·제2부에서 김종서(이순재 분)는 행복하지만 고민스러운 비명을 질러야 했다. 수양대군(김영철 분)이 자기 딸 이세령(문채원 분)을 김종서의 아들 김승유(박시후 분)와 결혼시키고 싶다고 제안한 직후에, 수양대군의 형인 문종도 자기 딸 경혜공주를 김승유와 혼인시키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왕과 왕의 동생이 동시에 사돈 맺기를 희망했으니, 김종서의 비명은 행복하지만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조선시대 사람들, 왕실과의 사돈 어떻게 생각했을까이 대목에서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왕실과 사돈 맺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하는 점이다. '그런 기회가 오면 덥석 물었겠지'라고 생각하면, 오판이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었기 때문이다. 그 같은 분위기를 증명할 만한 사료는 상당히 풍부하다.
왕실의 혼인을 국혼(國婚)이라 했다. 국혼은 가례와 길례로 구분되었다. 가례(嘉禮)는 주상이나 왕세자의 결혼, 길례(吉禮)는 왕자나 왕녀(공주·옹주)의 결혼이다. 국혼은 왕실의 어른인 대비·왕대비·대왕대비의 허락으로부터 시작해서, 결혼준비위원회인 가례도감·길례도감의 설치를 거쳐 금혼령과 간택 등의 절차를 거쳐 진행되었다.
금혼령과 동시에 전국적으로 발포된 것이 지원서 제출명령이었다. 지원서의 명칭은, 왕녀의 배우자를 뽑는 경우는 동자단자(童子單子, 총각 보고서)라 했고, 그 외의 경우는 처녀단자(처녀 보고서)라 했다.
지원서 제출명령에 대한 당시의 반응을 보면, 조선시대 사람들이 왕실과 사돈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영광입니다!"하고 받아들이기보다는 "저희는 됐습니다!"라며 기피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전국적으로 지원자를 모집했는데도 응모자가 극히 적었다는 사실에서 그 점을 알 수 있다.
예컨대, <헌종대왕 가례의궤>에 따르면, 1837년 제24대 헌종(정조의 증손)의 국혼 때는 지원자가 전국적으로 12명이었다. 1882년 왕세자 이척(훗날의 순종)의 국혼 때는 지원자가 25명이었다.
또 장서각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등에 소장된 궁중 서류를 소재로 한 김용숙의 연구에 따르면, 제23대 순조(정조의 아들)의 딸인 명온공주의 부마를 선발하는 간택에는 총 17명이 지원했다. 이런 사례들에서 나타나듯이, 국혼 지원자는 대체로 20명 혹은 30명을 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