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왜관 캠프 캐럴에서 고엽제를 매립했다고 폭로한 전 주한미군 스티브 하우스(왼쪽에서 세번째)와 1968년에서 1969년 사이 임진강 등에서 고엽제를 무단 방류했다며 진상규명을 하기 위해 방한한 전 주한미군 필 스튜어트(왼쪽에서 두번째)가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전 주한미군 고엽제 피해자 국회 증언대회'에 참석해 증언하고 있다.
유성호
"6개월 뒤 가보니 모든 식물이 말라 죽어 있었다"하우스씨는 이어 " 당시 드럼통은 녹슬거나 용액이 새고 있었고, 매립 기간에 나를 비롯한 동료들은 피부 발진과 심한 기침을 겪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또 그는 "매립이 끝나고 6개월 뒤에 현장을 방문했을 때 주변 산등성이 식물들이 모두 말라 죽어 있었고 새와 토끼, 다른 동물들이 (죽어서) 널려 있었다"고 말했다.
고엽제 후유증으로 의심되는 2형 당뇨병, 말초신경장애, 녹내장, 피부 발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을 앓고 있는 하우스씨는 증언 도중,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 고엽제에 노출된 미국인과 한국인들은 진실을 들을 자격이 있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날 증언대회에는 지난 1968~69년 경기도 파주 지역의 캠프 피터슨과 캠프 이선앨런에서 복무 중에 '에이전트 오렌지(고엽제)'를 부대 안팎의 차도와 인도, 임진강 선착장 주변에 살포했다고 증언했던 전 미 육군 대위 필 스튜어트씨도 참석했다.
스튜어트씨는 "1968년 캠프 피터슨에서 복무 중 부대 수송부에 에이전트 오렌지가 든 55갤런(약 208리터) 용량의 드럼통 200~300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스튜어트씨는 "당시 본부 중대 소속 병사들이 자주 수동 펌프와 분사 장비를 실은 트레일러를 이용해 캠프 피터슨 주변 폭 100m 정도의 지역과 부대 내 차도, 인도에 고엽제를 살포하는 것을 목격했다"며 "후에 이 드럼통들이 각 중대와 전방의 작업현장으로 옮겨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증언했다.
그는 또 "부하들이 살포 작업을 마치고 마을 빨래터에서 분사장비를 세척했고 통상적으로 이런 빨래터는 마을의 개울이었으며 분사장비에 남아있는 화학물질들은 개울물에 씻겨 내려갔다"고 말했다.
스튜어트씨는 또 중대장이었던 자신조차도 상부로부터 고엽제의 위험성에 대해 전달 받은 적이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고엽제)를 마시거나, 이것으로 이를 닦고 목욕을 할 수도 있다. 그래도 해가 없을 것이다'란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라며 "어떠한 예방 안전조치나 폐기 지침도 전달 받은 바 없다"고 주장했다.
"알았더라면 살포 명령 거부했을 것"이어 스튜어트씨는 겨울철에 난방유로 사용되던 디젤유를 고엽제가 담겨 있었던 빈 드럼통에 보관해 왔다며, "겨우내 모든 미군 캠프와 근처 마을에서 (디젤유가 연소되면서 나는)갈색 빛을 띠는 검은 연기를 매우 흔하게 볼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당시 고엽제가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알았더라면 살포 명령을 거부하고 부하에게도 그러한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라며 미 국방부와 미 육군에 관련 사실을 명백하게 밝힐 것을 촉구했다.
이날 증언대회를 공동으로 주최한 민주당 고엽제 특별위원회 및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오는 27일 이들과 함께 캠프 캐럴 현장을 방문, '고엽제 살포 의혹 진상 규명을 위한 민·관·군 공동 조사단'과 면담을 가질 계획이라고 밝혔다.